[IMF 신탁통치/구제금융 신청하기까지]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3분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는 지난 해 경상수지 적자가 2백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관계 전문가와 기업 등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올 들어 한보 삼미 대농 진로 기아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우려는 더욱 확산됐다. 외국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지난 8월엔 재경원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멕시코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IMF 구제금융을 포함한 모든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얘기까지 그때 나왔다. 하지만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기아문제 해결과 금융개혁법안에 매달리느라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강 부총리는 국회에서 우려를 표하는 의원들에게 『뭐가 나쁜지, 뭐가 잘못됐는지 대보라』고까지 했다. 대외경제연구원 등 관변연구소가 위기 가능성을 지적하면 보고서 배포를 금지했다. 9월21일 세계 핫머니(투기성 자금)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회장은 IMF총회에서 『자본은 언제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강 부총리는 『한국 경제는 지금 구조 조정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으나 기초가 튼튼하므로 전망이 밝다』는 연설을 되풀이했다. 강부총리는 IMF에 대한 한국의 출자지분율을 0.554%에서 0.779%로 높인데 대해 으스대는 자세를 취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때는 서방 투기자본의 한국 철수에 가속도가 붙어 있던 상황이었다. 10월중순 재경원 금융실은 이같은 움직임을 감지하고 IMF 구제금융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경원 관리들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지 실제 신청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에 기울어 있었다. 중앙은행 협조융자, 국채의 해외시장기채 등 다른 수단도 많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재경원 실무자들은 10월29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안」에 IMF 구제금융 등을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를 강화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러나 강부총리는 이를 삭제했다. 본보는 11월3일 IMF 구제금융까지 일단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러나 혹시 보도 때문에 사태가 더 나빠질까 우려, 보도를 자제했다. 결국 해외언론이 먼저 치고 나왔다. 미국 경제통신사 블룸버그는 11월5일 『한국은 곧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국가들처럼 심각한 금융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한국도 태국과 인도네시아처럼 IMF의 긴급구제금융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재경원은 곧바로 『한은 외환보유고가 10월말 현재 3백5억달러』라며 『IMF에 긴급자금요청을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식발표했다. 또 해당언론사에 엄중히 항의했다. 재경원은 즉각 『적어도 지금까지 IMF가 우리 정부에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한 적도 없고 우리 정부가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날인 16일 캉드쉬 IMF총재가 극비리에 방한해 있었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와 임창열 당시 통산부장관은 17일 캉드쉬와 만나 구제금융 신청 및 제공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20일 오후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가 방한, 청와대 재경원 한국은행 등과 접촉하며 구제금융 처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또 전날 취임한 임창열 신임부총리는 이날 저녁 티모시 게이드너 미국 재무차관보와 만나 금융위기 타개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임부총리는 21일까지도 IMF 구제금융은 마지막 수단이며 그 전에 미국 일본 등에 쌍무적 지원을 타진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미국정부는 IMF가 개입하지 않는 한 개별적으로 한국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청와대와 재경원이 두손을 들고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발표한 것은 21일 밤 10시였다. 〈임규진·백우진·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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