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동산,살 사람이 없다…투매-가격파괴현상 뚜렷

  • 입력 1997년 10월 10일 20시 27분


『큰 물건도 처분해 주느냐』 『비밀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 『가격은 상관없으니 빨리 처분할 수 있느냐』 10일 부동산컨설팅업체 H사로 S사 임원이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세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H사엔 최근 들어서만 크고 작은 기업 15개사가 은밀하게 부동산매각을 문의해왔다. 올 하반기 들어선 기업들이 부동산 매물을 쏟아내면서 투매(投賣)현상과 「기업보유 부동산 가격파괴」까지 나타나고 있다. 1백억원이 넘는 덩치 큰 물건중 빌딩 등 건물은 시세보다 40∼50% 낮아야 매수 희망자가 나온다. 토지는 더 심해 50% 이상 「꺾어야」 매도가 가능하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부동산매각을 중심으로 한 부실기업들의 자구계획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진로그룹은 장진호(張震浩)회장이 직접 발벗고 나서고 있으나 팔려고 내놓은 20건 1조2천억원 가운데 서초동 터미널부지 A, B지구 등 4건 3천4백억원어치만 팔렸다. 진로그룹 관계자는 『최근 쌍용 해태 쌍방울 등 대기업이 매물을 쏟아내면서 매기가 사라진 상태』라고 실토했다. 이 관계자는 또 『어느 회사에서 사겠다고 나서면 그 회사의 거래은행이 「부동산 살 돈이 있으면 빚을 갚으라」고 재촉해 막판에 결렬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기아도 사정은 마찬가지. 부동산 1백15건과 기타 자산 매각을 통해 2조7천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나 현재까지 14건 1천3백억원을 파는데 그쳤다. 해태그룹은 △해태전자 도봉 구로공장 △유통 부평공장 △제과 부천쇼핑부지 등을 총 2천9백억원에 팔려고 내놓았으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쌍용그룹도 쌍용증권빌딩 은화삼골프장 등 불요불급한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남보다 한발 앞서 구조조정을 한 두산그룹은 95년말부터 부동산 매각을 추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OB맥주 영등포공장 등 10건을 2천억원에 팔아 치웠다. 두산그룹 임원은 『현재 기업들이 건당 1천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팔겠다는 자구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결국 계획에 그치고말아 쓰러질 기업은 쓰러질 뿐』이라고 말했다. 〈오윤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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