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승재/어느 청년사장의 죽음

  • 입력 1997년 10월 1일 19시 55분


김종필(金鍾泌·30)씨가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15년 전의 일이었다. 『취미 없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애쓰며 인생을 낭비하긴 싫다. 「사장」이 되겠어』 졸업 후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공업용 고무중개상에 취직했다. 사장 1명, 직원 1명 그리고 경리 여사원 하나. 김씨의 커다란 꿈에 비해 왜소한 직장이었다. 납품업체에 대한 자존심 상하는 굽신거림. 「세상이란 이런 걸까」. 직장을 옮길까 여러번 생각했지만 언제나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고집으로 버텼다. 6년이 흘러 스물다섯살. 결혼도 했다. 「이젠 사장이 될 차례야」. 김씨는 적자에 시달리는 중개상 사장에게서 수천만원의 빚과 함께 사업을 물려받았다. 꿈에 그리던 「사장」이 된 김씨. 그러나 사회는 학교에서 배운 대차대조표처럼 논리적이고 명쾌하지 않았다. 납품의 대가는 언제나 현금이 아닌 어음. 어음은 끊임없이 나돌았고 할인은 또 다른 할인을 낳았다. 돈이 궁했다. 아내(29)에게 생활비조차 건네줄 수 없었다. 친정에 몇만원씩 때로는 몇십만원씩 빌려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아내에게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 김씨. 그러나 불황은 그의 목을 더욱 죄었다. 유일한 희망, 납품의 대가로 받은 1억6천만원짜리 어음. 하지만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의 부도로 어음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졸지에 쫓기는 몸. 1천3백만원짜리 전세 단칸방은 빚쟁이들이 모여 있기에도 좁았다. 김씨의 눈에는 이들에게 시달릴 아내와 두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1일 오전 2시 서울 천호대교 남단. 김씨의 엑센트승용차는 한강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전화. 『죽는 수밖에 없어. 내가 없어지면 당신은 꼭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아. 나같은 남편 만나지 말고…』 숨진 김씨의 호주머니에선 물에 젖은 약속어음 15장이 발견됐다.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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