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대 문헌서도 중독 경고… 인류와 함께한 탐닉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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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문헌 속 ‘노름꾼의 애가’ 등 고대 중독 대상은 주로 도박-술
15세기 이후 담배-마약 등 퍼져… 현재까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중독 전문의 저자도 중독 경험… “한 가지 방식으론 치료 어려워”
◇중독의 역사/칼 에릭 피셔 지음·조행복 옮김/512쪽·3만원·열린책들

미국 화가 너새니얼 커리어가 1846년 그린 석판화 ‘술고래의 여정’. 술 한 잔으로 시작해 극단적 선택으로 끝나는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19세기 중반 알코올 의존증에 반하는 미국의 절제 운동을 상징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화가 너새니얼 커리어가 1846년 그린 석판화 ‘술고래의 여정’. 술 한 잔으로 시작해 극단적 선택으로 끝나는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19세기 중반 알코올 의존증에 반하는 미국의 절제 운동을 상징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최근 미국 거리를 좀비처럼 누비는 신종 마약 펜타닐 중독자들이 뉴스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대한민국도 급증하는 마약 사범으로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 인간은 왜 위험한 탐닉에 빠져들며,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미국 컬럼비아대 임상 정신의학과 조교수이자 중독 전문 의사인 저자는 실제 알코올과 각종 약물의 중독자로서 직접 힘겨운 회복 과정을 겪었다. 책은 두 개의 줄기로 진행된다. ‘인류의 중독의 역사’와 ‘저자 개인의 중독의 역사’다.

인도 고대의 종교 문헌 리그베다에는 ‘노름꾼의 애가(哀歌)’라는 시가 나온다. “그것은 주사위일 뿐이지만 올가미로 낚고 부추기고 타락하게 하고 말려 죽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지 않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하는 것’ 아크라시아(ακρασα)에 주목했다. 고대인들에게 중독이란 거의 노름이나 술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도 첫 문제는 술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머물 때 소주병을 병째 들이켜며 밤늦게까지 스타크래프트를 하곤 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뒤에는 애더럴이라는 각성제에 손을 댔고 만취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다 경찰에 연행됐다.

인류의 중독에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한 것은 1492년이었다. 콜럼버스 함대의 선원 데 헤레스가 풀잎을 말아 태우며 연기를 마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보고 이 풀을 고향에 가져왔다. 감옥에서 7년을 보낸 뒤 그가 석방되었을 때 담배는 유행 아이템이 되어 있었다. 여러 약물의 역사 가운데 184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작은 모임도 흥미롭다. 문호 발자크와 위고, 뒤마가 참석한 모임의 목적은 ‘동양의 신비한 약물 해시시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말 처음 소개된 코카인도, 1898년 생산이 시작된 헤로인도 처음엔 ‘기존 약물보다 안전하게 고통을 덜어주는 약’으로 찬사를 받았다.

저자는 역사상 나타난 중독 문제의 해결책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가장 오래된 금지론적 접근법은 중독을 처벌로 통제한다. 18세기 말 미국 의사 러시가 주창한 치료적 접근법은 중독을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보며 중독자는 범죄자에서 환자로 바뀐다. 환원론적 접근법은 생물학 기반의 과학적 치유를 모색한다. 서로 돕기 접근법은 중독 치료 모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다. 연대와 정신적 성장을 통한 회복을 추구하며 중독자는 치유의 동지가 된다.

스스로 중독의 고통을 경험한 저자는 금지론적 접근법보다 치료적 접근법이나 서로 돕기 접근법에 더 점수를 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말썽을 부리지 않은 채 체포된 마약 중독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1960년 로빈슨 사건 이후 치료적 접근법이 강조됐고 1982년 레이건 행정부의 ‘약물 퇴치 전쟁’으로 다시 금지론적 접근법이 대두했지만 어느 쪽이든 단일한 방법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중독 퇴치에 완벽한 접근법은 없고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그 방점은 바뀌었다”며 중독에 유일한 해법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고통받는 이들에게 더 나은 구원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은 중독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을까. 책 말미에 저자는 “여러 해가 지났고 이제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전한다.

“중독은 인간의 보편적인 약점이 쉽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물질이 두뇌에 작용한 결과라기보다는 욕구와 보상, 자제력에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인간 문제의 한 단면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중독 경고#탐닉의 역사#중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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