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가 툇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마당 한가운데 놓인 화분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독서여가(讀書餘暇)’ 속 장면이다. 겸재가 52세 무렵 서울 북악산 아래 유란동에서 생활하던 때 그린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조선시대 문인들의 꽃과 나무 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서울 강남구)은 특별전 ‘조선양화(朝鮮養花)―꽃과 나무에 빠지다’를 2일 개막했다.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국보 ‘백자청화매죽문호’를 비롯해 꽃과 나무를 담은 조선시대 서화와 도자, 기록물 등 110점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전시물 중 조선 초기 문신 강희안(1417∼1465)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조선 사대부의 원예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한국 최초의 전문 원예서인 이 책에서 강희안은 화분에서 재배하는 법부터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꽃이 싫어하는 것 등을 담았다. 특히 강희안이 강조한 것은 ‘양생법(養生法)’이었다. 미물인 풀 한 포기일지라도 그 본성대로 잘 살펴 기르면 자연스레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희안은 “식물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이 마음과 몸을 피곤하게 하여 천성을 해쳐서야 되겠느냐”고 적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화원은 꽃과 나무를 키우며 자신을 성찰하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19세기 ‘백자청화장생문화분’을 비롯해 전시에 소개된 다채로운 분재(盆栽) 문양 장식 백자는 조선 후기 원예문화의 유행을 보여준다. 원예 취미가 유행하면서 분재에 필요한 기물들도 함께 발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분재 문양이 장식된 백자와 도자 화분이 유통되고 소비됐다. 꽃과 나무를 담은 백자와 도자는 그 자체로 감상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11월 30일까지. 500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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