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베던 음악감독 “한국 작곡가 창작음악 적극 소개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7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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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판 즈베던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간담회
“오케스트라는 여러시대 소화 ‘카멜레온’ 돼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여정에 무척 기대가 큽니다.”

2024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지휘자 얍 판 즈베던(63)이 취임 이후의 계획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가졌다. 즈베던은 갑작스런 사고로 부상을 입은 오스모 벤스케 전 음악감독 대신 12,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지휘해 예정보다 반 년 일찍 서울시향 무대에 데뷔했다. 간담회에는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가 함께 참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4년 1월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얍 판 즈베던이 17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서울시향 음악감독 직을 수락하게 된 동기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16살 때부터 미국 줄리어드음대에서 수학하면서 강효 교수에게서 음악가로서의 직업윤리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뉴욕 필 등에서도 한국 출신 연주자를 많이 만났다. 클래식의 미래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2년부터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연주 색깔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 5년의 임기는 충분하다고 보나.

“위대한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완전히 다른 작곡가들의 색채를 구현해내는 데 있다. 오늘은 렘브란트처럼, 내일은 고흐처럼. 오늘 바흐 곡을 하고 내일은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며 카멜레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년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충분한 시간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네 차례 서울시향 정기공연을 지휘하니 실질적으로 5년 반이며 계약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나와 악단 서로가 원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는 매우 좋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다. 꽃이 자라도록 하려면 땅에서 뽑아내려 해서는 안 된다.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리허설에서 단원들이 두려워하는 지휘자로 알고 있고,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인정해 왔다. 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식의, 단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는 의견들도 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18년 동안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내며 연주자를 존중하는 걸 배웠다. 하지만 높은 수준으로 무대에 오르려면 110%를 준비해야 한다. 내가 리허설에서 까다로운 것은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것이다. 아바도의 민주주의에 공감한다. 나는 38세에 지휘를 시작했는데, 한 번도 지휘자로서 단원을 해고해본 일이 없다.”

―4월에 신규 단원을 채용할 예정인데. 단원 채용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다.

“오디션을 할 때 기존 단원 수준과 맞아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연주자를 넘어 오케스트라 음향에 참여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 옆 사람의 연주를 들을 줄 알야 한다. 내가 18살 때 콘세르트헤바우 단원이 되었을 때 음악감독 하이팅크도 ‘전체 음향의 일부가 되라’고 가르쳤다.

―콘세트르헤바우에서 악장을 지냈는데, 악장과 지휘자의 차이를 든다면.

“콘서트마스터는 자기 연주 뿐 아니라 매우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지휘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준비다. 뮌헨 오페라와 발레 감독을 지낸 지휘자 앙드레 프레서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콘세르트헤바우 단원 시절에는 게오르그 솔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등 많은 대지휘자들로부터 ‘무료 레슨’을 받은 셈이다. 지휘자가 단원들 앞에 섰을 때 느끼는 건 권력감이 아니라 ‘모든 단원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의 맨 앞줄부터 맨 뒤까지 모든 걸 알아야 한다. 뉴욕 필에서는 단원들이 나를 가리켜 ‘모든 걸 다 보고 있다’고 말한다. 오케스트라는 가족과 같으므로, 음악 뿐 아니라 그들에게 일어난 가능한 모든 일들을 다 알아야 한다.”

―동시대 창작음악을 많이 소개할 계획인가.

“뉴욕필 음악감독으로서 거의 2주마다 한 곡씩 세계 초연곡을 소화한다. 일종의 ‘소리의 사파리(탐험)’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서울의 외교관 역할을 하므로 재능 있는 한국 작곡가들을 가능한 많이 찾아내고자 한다.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 작곡가는 특히 환상적인 음악을 쓰는 작곡가이므로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 2025년 시즌에는 대략 프로그램의 30%를 동시대 창작음악에 할애하려 한다.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2024년은 오스트리아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의 탄생 200주년이 된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내놓은 바 있는데….

“브루크너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곡가다. 말러가 음악에서 신을 찾고자 노력했다면 브루크너는 신을 찾아냈다. 말러가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같다면 브루크너는 감정을 넘은 영원의 빛을 보여준다. 2024년에 브루크너 곡을 한 곡 또는 그 이상 연주할 것이다. 하지만 첫 시즌이니만큼 한 작곡가보다는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선보이려 한다.”

―네덜란드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 활동을 부인과 함께 펼쳐온 것으로 알고 있다.

“38명의 음악치료사가 음악치료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폐 스펙트럼 아동과 가족을 돕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아이 컨택트’가 필요하므로 음악치료가 특히 중요하다. 눈을 맞추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맞추는 것과 같다.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도 이 재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간담회에서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현 세종문화회관 시설 일부에 들어설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에 대해 “현재 타당성조사 단계이며 2028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가 즈베던 감독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즈베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 앞서 12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음악감독 임명장을 받았다. 즈베던 감독은 이 자리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친분이 있다”며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 홍보대사를 해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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