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연극배우’ 유동근 “자다가도 일어나 대사 외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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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 추상주의 화가 역할
천재의 비극과 철학 치열하게 표현
“새롭고 귀한 경험, 배역 접신 염원”

30년 만에 ‘레드’로 연극 무대에 선 유동근은 “로스코의 치열한 삶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매일 고민하며 연습한다”고 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30년 만에 ‘레드’로 연극 무대에 선 유동근은 “로스코의 치열한 삶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매일 고민하며 연습한다”고 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30년 만에 선 연극 무대는 마치 첫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새롭고 귀한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배우 유동근(67)이 연극 ‘레드’로 무대에 돌아왔다. 1980년대 민중극단의 전단지를 붙이며 연극계에 발을 들인 그는 서울 중구 엘칸토예술극장에서 연기를 하다 무대를 떠났다. 43년 차 베테랑 배우지만, 오랜만의 연극 무대는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0일 만난 그는 “요즘 하루 종일 연극 ‘레드’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작품에 미쳐 있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에서 배우 정보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 역을 맡았다. 미국 극작가 존 로건이 쓴 ‘레드’는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강승호 연준석)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로스코가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의 고급 식당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 벽화를 의뢰받아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 돌연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을 더했다. ‘레드’는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최우수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유동근이 30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후배 정보석이 출연한 ‘레드’를 관람한 것이었다. 작품과 캐릭터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로스코 역에 캐스팅되자 난관이 찾아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본, TV와는 다른 발성 등이 큰 숙제였어요. 다른 배우들보다 3주 먼저 연습을 시작했고 연극 발성을 되찾고자 선생님을 따로 구해 배웠죠.”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분석하고 연습에 매달렸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1막과 마지막 5막을 장식하는 한마디 ”뭐가 보이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그는 “야멸차게 훅 지나가버리는 짤막한 대사에 천재 화가 로스코가 겪은 비극과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 녹록지 않다”며 “공연 전 홀로 캄캄한 무대에 서서 ‘오늘 내가 로스코와 접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염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배역에 몰입하려 한 탓에 일상에서도 로스코의 모습이 나온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뭐가 보이지?”를 외친다.

그는 앞으로 로스코의 ‘레드’처럼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무수한 의미와 감정을 담아내듯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무대에서 또 만날 수 있냐는 질문엔 “몸 안에 깃든 로스코를 ‘소각’시키는 데에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2월 19일까지, 4만∼7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연극#레드#유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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