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錯視)…눈으로 즐기는 ‘현실 속 가상현실’[고양이 눈썹]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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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19년 6월


▽세계 최초 대형 착시 벽화는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가 그린 성 이그나치오 교회의 천장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 이그나치오 교회 홈페이지
성 이그나치오 교회 홈페이지


투시도 기법을 이용해 천정을 뚫고 승천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에도 착시 그림은 꽤 유행했지만, 미켈란젤로 같은 ‘정통 화가’에게 저급하다고 경멸당하던 장르였습니다. 그럼에도 포초는 왜 착시그림을 그렸을까요. 돈 문제였습니다.

이 교회를 세울 때 건축비 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느라 성당의 자존심과 같았던 돔(Dome)을 세울 비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포초는 눈속임 기법을 이용해 어두운 돔 그림을 천장 양쪽 끝에 그려 마치 돔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는 성 이그나치오를 넣었습니다. 돔 없는 교회의 자존심을 눈속임으로라도 살려낸 것이죠. 실제로 평평한 천장을 돔처럼 만들어 ‘가상 공간’을 확장한 셈이기도 하고요. 이 교회 홈페이지 영어버전에는 ‘Fake Dome’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양쪽 ‘가짜 돔’ 사이 거대한 천장에는 상상력과 원근법을 동원해 사람들과 천사들이 승천하는 듯한, 화려하면서도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모두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이지만 너무나 생생해 입체 현상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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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의미를 나타내는 평면이다. 그것은 ‘저기 바깥에 있는’ 시공간 속의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림은 이 어떤 것을 우리에게 추상물(즉 4차원 시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축소하는 것)로 표상하도록 한다. 시공간으로부터 평면으로 추상화시키고, 또 다시 시공간 속으로 환원시켜 재투영시키는, 이와 같은 특수한 능력을 우리는 ‘상상력’이라 부른다. 이 개념은 그림의 제작과 암호해독을 위한 전제다. 다시 말해서, 현상을 2차원 상징으로 암호화시키고, 이 상징을 해독하는 능력이 바로 상상력이다.”

- 사진 철학자 빌레 플루서의 책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1983년) 중

그림은 2차원 평면 세계입니다. 플루서는 그림이 입체 공간(3차원)과 순간의 포착(4차원)을 2차원으로 암호화 한 것이고, 이 그림을 보며 입체와 시간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는 인간만의 능력이 아닌 듯 합니다. 바닥에 구멍이 뻥 뚫린 트릭 아트 매트를 깐 뒤 개나 고양이를 지나가게 하면 점프해 뛰어 넘거나 옆으로 돌아갑니다. 혹시 거리 측정 같은 공간에 대한 해석은 인간이나 동물의 뇌가 가진 자동 시스템 아닐까요?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생존 시스템 말입니다.

2018년 9월
2018년 9월


▽지난 6월 뉴욕타임즈는 착시 현상이 눈과 뇌와 관련돼 있다는 연구결과를 게재 했는데요(https://www.nytimes.com/2022/06/06/science/optical-illusion-tunnel.html), 착시 그림을 보면 뇌가 속아 눈의 동공을 확장하거나 축소한다는 것입니다.

위 기사에 등장하는 연구진은 착시를 “불확실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두뇌가 전략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착시가 인류 생존과 진화의 역사 속에서 생겼다는 것인데, 개나 고양이의 사례로 볼 때 시각이 발달한 모든 동물에도 해당될 것 같습니다.

2013년 8월 마카오 세도나 광장. 물결무늬 블록바닥이 높이에 굴곡이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2013년 8월 마카오 세도나 광장. 물결무늬 블록바닥이 높이에 굴곡이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만약 착시가 시각 체계의 일부라면, 우리는 현실 속에서 부분적으로 가상현실(또는 가짜 현실)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생존에 도움이 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겠죠. 우리 주변의 착시를 찾아보시죠. 유머 사이트에는 다양한 착시 사진이나 그림이 올라옵니다. 착시 현상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유튜버도 있습니다.

착시는 크고 두꺼운 VR기기를 뒤집어쓰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시각 경험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빨간 약을 먹을 것이냐, 파란 약을 먹을 것이냐 고민할 필요도 없고요.

사진출처 페이스북
사진출처 페이스북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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