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새앨범’ 빛과 소금 “‘각자만의 레시피’ 증명 위해 음반 냈죠”

  • 뉴시스
  • 입력 2022년 5월 31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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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중음악계 낯익은 멜로디와 익숙한 노랫말이 ‘빛과 소금’으로 환기됐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한국 시티팝 원조’로 추앙 받는 듀오 ‘빛과 소금’(박성식·장기호)이 주인공. 특히 이들의 대표곡인 ‘샴푸의 요정’은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투바투), R&B 가수 정기고, 그룹 ‘마마무’ 멤버 겸 솔로 가수 화사 등이 커버하며 우리 대중음악의 명실상부 클래식(Classic)으로 자리매김했다.

빛과 소금은 한창 활동하던 당시에 견고하던 주류 음악시장을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뉴 웨이브’가 됐고, 국내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들었다.

빛과 소금의 음악적 힘을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사상을 빌려 표현하면, ‘심미적 이성의 강철 같은 사유의 노동’. 이들의 서정성은 치열한 화성적인 고민 끝에 나온 산물이며, 도회적이지만 우울한 정서는 계산된 편곡의 미학이었다.

빛과 소금이 무려 26년 만에 발매한 정규 앨범인 6집 ‘히어 위 고’(Here we go·다시 시작해보자)는 여지 없이 명반이다. 지난 2020년 30주년도 기념하는 이 음반은 몇년 전부터 국내에서 분 ‘시티팝’(미디엄 템포의 세련되면서 고급스러운 편곡, 맑고 감각적인 멜로디와 사운드가 특징인 도회적인 풍의 팝) 열풍과 별개로도 충분히 독자성을 발휘한다.

타이틀곡 ‘블루스카이’를 통해 데뷔 이후 처음 공식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오늘까지만’은 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랩(래퍼 서출구 피처링)을 삽입한 곡이다. 물론 이 같은 시도도 앨범의 새로움에 한몫한다.

하지만 빛과 소금은 직접적으로 새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새로움이 이들 음악 자체에서 노래한다는 걸 이번 음반은 증명한다.

최근 논현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운드트리에서 만난 빛과 소금의 박성식·장기호는 “뮤지션들은 각자만의 레시피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흐트러진 가요계 기강 잡으러 오신 교수님(박성식은 호서대 교수·장기호는 서울예대 퇴직)들. 코드 진행이며 편곡이며 예술 그 자체”(paleXXXXXXXX) 같은 반응이 나오는 등 젊은 세대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습니다.

“2030 MZ세대들이 ‘빛과 소금’을 알아봐주니시까 신기해요. 사실 저희 자녀들 세대잖아요.”(박성식)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 뿌리가 같은 ‘봄여름가을겨울’과 ‘봄빛’이라는 프로젝트를 결성, 33년 만에 함께 신곡을 발표하시기도 했습니다.(‘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은 보컬 겸 리더 김현식(1958~1990), 유재하(1962~1987·키보드), 전태관(1962~2018·드럼), 김종진(기타), 장기호(베이스)로 구성됐었다. 전태관과 김종진은 이 밴드의 이름을 이어 받아 퓨전 듀오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했다. 장기호는 팀을 가장 먼저 탈퇴한 유재하를 대신해 키보드주자로 합류한 박성식과 함께 ‘사랑과평화’를 거쳐 기타리스트 한경훈과 ‘빛과소금’을 결성했다. 이후 1990년대 초반 한경훈이 팀을 탈퇴, 2인 체제로 빛과소금은 이어졌다.)

“봄빛 프로젝트는 코로나19 때문에 멈칫하다 스톱이 됐어요. ‘봄빛’이라는 타이틀로 공연까지 하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전태관 씨가 살아 있을 때 넷이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쉽죠. 태관 씨 1주기에 맞춰 한 건 의미가 있었어요.”(박성식)

-몇년 전부터 ‘시티팝 레전드’로 재조명됐고 조상으로 ‘추앙’ 받으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2019년 ‘제9회 서울레코드페어’ 때 빛과 소금은 1집 LP 재발매 기념 팬 사인회를 열기도 했는데 MZ세대가 긴 줄을 섰다.)

“저희가 음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시티팝’이라는 용어가 없었어요. 퓨전 음악도 (빛과 소금의 음악을 가리키는) 정확한 명칭은 안 되고요. 뭔가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기는 했는데, 일본 프로듀서가 모던하고 도시적인 음악들을 시티팝으로 구별했다고 들었어요. 제 생각에는 일본의 청중(현지에서 빛과 소금 같은 한국 시티팝들이 조명되기도 했다)들도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또 대한민국에서 저희가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진 음악을 했고요. 그런 결에는 (국내 시티팝 원조 중의 한명으로 통하는) 김현철 씨도 당연히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들의 음반이 젊은층 중심으로 알려진 게 된 건 디깅(발굴)하다가 독특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해요. 저희는 히트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해보겠다는 생각도 안 했고요.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장기호)

“(시티팝으로 젊은 세대에게 재조명되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저희 음악의 색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90년대 주류 음악 색깔은 발라드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조금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죠. 코드 진행도 평범하지 않고, 악기를 사용하는 방식도 달랐고요.”(박성식)

-대중적으로는 덜 조명됐지만 빛과 소금이 CCM 음악도 한다는 사실이, 팀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이번 앨범 4번 트랙 ‘우리 모두에게’도 CCM 곡이다). 경건하고 깔끔한 사운드와 메시지 측면에서요. ‘빛’ ‘소금’도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죠?

“빛과 소금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크리스천 밴드’라는 인식이 생겼죠. 이름 때문에 자칫 검열 시스템도 발동합니다. 표절이나 B급 가사를 신경 써서 필터링하죠. 노래를 만들거나 가사를 쓸 때, 편곡을 할 때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래서 그런지 고급 팝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자) 이름 때문에 함부로 활동할 수도 없어요.”(박성식)

“빛과 소금이라는 이름은 저희가 미리 바리케이드를 친 거죠. 행사에 다 출연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장기호)

“1집을 내고 활동하는데 방송 홍보 원칙 중 하나가 ‘주일(일요일)엔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한다’였어요. 근데 당시 주일에 녹화를 했던 프로그램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전 교회 반주와 지휘를 맡고 있어서 그것이 힘들었죠. 그렇게 방송을 많이 하지 않아서 뜨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박성식)

“저희가 (미디어를 통한 대중에) 노출이 안 됐던 거죠.”(장기호)
“제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들은 가스펠이 당시 어떤 음악보다 세련됐어요. 어릴 때부터 고급스런 화성, 선율, 편곡적인 부분 등에 있어 고급 경험을 한 거죠.”(박성식)

“외국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거예요.”(장기호)

-이전 마지막 정규 앨범이었던 5집 ‘천국으로’(1996)도 명반이었는데 활동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장기호 씨가 20대 초반부터 유학을 계획했는데 사랑과 평화, 빛과 소금 활동을 하느라 계속 못 갔어요. 4집을 내고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1995~1999)을 위해) 출국을 했는데 5집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죠. 제가 버클리로 가서 녹음을 하고 한국에 와 잠깐 공연을 한 뒤 다시 공부하러 갔어요. 근데 당시가 IMF 외환위기 때라 기호 씨가 고생을 많이 했죠.”(박성식)

“당시 성식 씨는 미국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어요.”(장기호)

“결국 못 했어요. 제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 선생님을 되게 좋아해서, 그 분에게 사사를 받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20대 후반일 때 돌아가신 거죠. 살아 계셨으면 운전수라도 할 생각을 갖고 있었죠.”

-(클래식음악) 지휘에 대한 관심이 빛과 소금 음악을 만드시는데도 도움이 됐죠?

“대중음악은 기본적으로 드럼 리듬을 설정해 놓고 그 위에서 모든 걸 얹어서 표현하거든요. 반면 클래식음악은 자연적인 호흡과 템포, 루바토에 의해 숨을 쉬고 내뱉고 또 아티큘레이션(음을 분절(分節)하는 방식)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런 걸 (유학을 가서) 배우고 싶었죠. 사실 예전엔 베토벤이 딱딱하고 선율도 투박한 거 같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대가가 고민과 호흡을 통해 만든 자연스런 음악의 언어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박성식)

-경쾌한 비트가 강조된 ‘블루스카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재를 만들면서 샘플로 실으셨던 곡이라고요.

“사실 음악을 만드는데 정답은 없어요. 다만 각자의 명답들은 있긴 마련이죠.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박성식 씨가 노래를 만드는 방식과 제가 노래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고, 무엇이 옳다고 할 수 없죠. 다만 서양 대중음악의 핵심인 테크닉이 무엇인지 저는 궁금해했고 그래서 유학을 결정했어요. ‘블루스카이’ 같은 경우는 감성을 작동하는 것을 이성으로 보고 만든 곡이에요. 만약 슬픈 노래라고 한다면, 가사가 슬픈 것도 있겠지만 그런 정서를 유도하는 스케일과 화성을 사용해서 슬픈 감정을 표현할 수 있죠. 가사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음악 자체에서 나오는 감정을 위해선 이성(적 작법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블루스카이’는 저만의 음악 조제 방법을 통해서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노래예요.”

-이번 음반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두 분의 개성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일단 들었을 때 아름다운 음악을 추구해요. 제가 아름답다 느끼면 대중도 100% 아름답다고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장기호 씨가 실험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곁눈질해서 넣기도 하죠. 그게 서로 시너지가 됩니다. 장기호 씨의 음악이 프랑스 양식당의 음식이라면, 저는 건강식을 추구하는 한식당의 음식 메뉴죠. 그게 같은 식당 안에 함께 있는 셈이에요.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도 섭취할 수 있고, 독특하고 세련된 처음 맛보는 음악도 함께 접할 수 있는 게 이번 저희 6집이에요.”(박성식)

-헤어짐의 아픔을 담담하게 표현한 사랑 노래인 R&B 풍 ‘오늘까지만’은 박성식 선생님이 부르셨는데 (빛과 소금의 많은 곡은 장기호가 불렀다.) 목소리가 더 감미로워졌어요.

“제 목소리가 갈수록 맑아져요. 전 장기호 씨처럼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해요. 김현식 형님과 함께 활동할 때 느낀 건 형님이 잔기교가 많게 노래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담담하게 부르셨는데 자신만의 기법이 있었죠. 제가 담담하게 부르는 것 그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장기호 씨가 보컬 디렉팅을 맣이 해줬어요.”(박성식)

-사랑에 충실했던 때를 노래한 컨트리 록인 ‘사랑의 묘약’은 빛과 소금 이전 음악 스타일과 상당히 달라요.

“중고등학교 때 이글스 ‘호텔 캘리포니아’ 같은 서정적인 컨트리록을 많아 들었어요. 빛과 소금을 하면서는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못해봤죠. 이번에 젊었을 적 사랑한 때를 기억해 숨 막히고 떨리는 마음을 컨트리 록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노래예요. 국내 컨트리 록 그룹 ‘11월’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던 저희 친구 장재환에게 부탁을 했어요. 기호 씨가 불렀으면 더 세련된 맛이 있었을 텐데 공연장에 오시면 기호 씨 버전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하.”(박성식)

-유명 실용음악과 교수님들이기도 하죠. 실용음악과는 싱어송라이터 배출 통로이기도 한데 요즘 국내 대중음악계는 싱어송라이터가 활동할 수 있는 신(scene) 자체가 좁은 거 같습니다.

“필드 자체가 단순 획일화됐어요. 문화 예산을 음악 쪽에 대폭 지원을 해주고 방송 매체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죠.”(박성식)

“뮤지션의 길은 궤도에 오를 때까지 굉장히 고난의 길을 겪어야 해요.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뮤지션들이 안정적인 삶에 접어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죠. 그런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먼저 제대로 있어야 하죠.” (장기호)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시는데요. 어떤 음악이 새롭고 세련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직 저희가 해보지 못한 장르가 많아요. 그런데 장기호 씨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추구하니 다음 앨범에선 어떤 것을 내놓을 지 모르죠. 저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면서 노랫말이 갖는 내용, 편곡적인 부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해요.”(박성식)

“데이트하고 와인 한잔 마신 뒤 느끼는 기분 때문에, 감상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베토벤이 (감성적인) 월광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하이든에게 열심히 배우며 공부해서 가능했던 계산이라고 보죠. 곡을 로맨틱하게 만들려면 화성의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런 방법론을 배우고 싶어 (유학을) 간 거죠.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만큼 실패도 많이 해요.”(장기호)

“일반적 세련됨의 기준이 아닌 장기호만의 세련됨이 따로 있어요. 굉장히 독특하죠. 그게 빛과 소금의 세련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요. 그렇게 계속 시도를 하는 건 존경할 만한 부분이에요.”(박성식)

“제자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요. ‘너만의 레시피를 가져라’고. 빛과 소금은 박성식의 레시피, 저의 레시피 그리고 공유되는 레시피가 있죠. 물론 자기 레시피 없이 흉내내는 것도 좋은데 그러다 보면 뮤지션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표절의 위험에 빠질 수 있어요. 음악이 너무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머라이어 케리처럼 노래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스타일로 더 잘 부르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결국 주목 받지 못해요. 이미 케리가 있으니까요. 제가 학생들에게 ‘너는 너가 돼야 한다’ ‘너만의 소리를 가져가라’ ‘너만의 레시피를 가져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이유죠. 그걸 저도 보여줘야 하니까, 이번 음반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거죠.”(장기호)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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