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스럽지 않아서 더 특별한 곳, 진흙으로 빚어낸 담백함을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5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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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장에 들어서면 동그란 원형 좌대와 따로 마련된 네모난 공간이 눈에 띈다. 우물과 가마의 형상이다. 이 둘은 권진규와 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가 주로 썼던 기법인 테라코타(흙으로 빚어 불에 굽는 방식)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 안에는 실제로 그가 작업하며 썼던 우물과 가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듯 이 전시 공간은 권진규의 정체성을 곳곳에 반영하고 있다. 전시장을 건축한 김세진 지요건축사사무소장은 “별스럽지 않음”을 이 공간의 특징으로 꼽았다. 지난해 9월, 김 소장이 권진규 아틀리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느낌이기도 하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문, 가공되지 않은 벽, 특별한 물성이 느껴지지 않는 면들, 무덤덤한 선반…. 모든 것이 보편적이고 별스럽지 않았다”는 것. 김 소장은 그런 담백함을 전시 공간에도 그대로 투영했다.

“요즘은 전시장 자체가 재밌게 꾸며진 공간들이 많지만, 이 공간만큼은 작품을 위한 배경을 자처하고 싶었다”는 김 소장의 의도는 좌대에서부터 드러난다. 좌대는 무광에 흰색이다. 심심해보일 정도로 특징이 없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권진규 조각의 질감과 색을 부각시킨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좌대 밑을 바치고 있는 것들이 삼공블럭과 벽돌이란 것이다. 이는 1965년 신문회관에서 1회 개인전을 열었을 때 권진규가 삼공블록과 벽돌을 이용해 자기 작업실을 형상화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주로 볼 수 없었던 재료는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김 소장은 “블록과 좌대 사이에 공백이 있다. 날것의 재료처럼 보이는 블록이 완성 이전의 단계를 뜻한다면, 좌대부터는 온전히 작품을 위한 무대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원의 얼굴’(1967년)
‘지원의 얼굴’(1967년)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년)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년)
조각 뒤로 벽을 세워 다른 작품으로의 시선을 차단한 것들은 은연중에 중요함을 내포한 작품들이다. 자신을 예술가 이전에 장인이라 생각했던 권진규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손’(1963년),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1967년), 한 교회가 제작을 의뢰해놓고 누추하다는 이유로 반려해 평생 작가의 작업실에 있었다는 조각상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1970년) 등은 그의 예술 세계에 빠질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중 가장 넓은 공간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승려로 자신을 표현한 말기 작품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년)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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