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권법으로 두려움과 맞서세요!” 시각장애인도 ‘맞춤형’으로 무술 배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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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장애인 당사자 의견 적극 반영한
장애 유형별 비대면 교육 개발

시각장애인 김주성 씨(왼쪽)가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구은정 작가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중 ‘호권’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시각장애인 김주성 씨(왼쪽)가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구은정 작가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중 ‘호권’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앞에 적이 있습니다! 오른손 ‘호랑이의 발톱’을 사선으로 내리치세요!”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연습실. 시각장애인 김주성 씨(37)가 오디오북 안내에 따라 열 손가락에 끼운 호랑이 발톱 모양의 장갑으로 가상의 적을 무찌른다. 시력은 잃었어도 적을 단숨에 무찌를 수 있는 ‘호권(虎拳·호랑이 권법)’의 고수가 된 기분이다.

호권은 진흥원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비대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용사의 무기’ 중 하나다. 이날 김 씨를 비롯한 3명의 시각장애인은 이 프로그램의 시연 워크숍에 참여해 호권, 사(蛇·뱀)권, 학(鶴)권 등의 각종 무술 동작을 체험했다.

김 씨는 “평소 몸을 많이 움직일 기회가 없었는데 용사의 무기 프로그램은 무술까지 가미해 운동도 되고 노는 재미도 있다”며 “무술처럼 장애인이 접하기 힘든 영역을 접목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다양한 연령대의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흥원은 이번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시작 단계부터 실제 이용자인 장애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의 경우 좁은 보폭 등으로 신체 활동이 위축되는 탓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에 대한 요청이 많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은정 작가는 “비장애인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신체 활동이 위축되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며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개념으로 프로그램 방향을 잡고 무술, 무기를 주제로 촉각과 청각을 활용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에 제약이 커지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0 발달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조사 및 정책과제 수립연구’ 보고서를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발달장애인과 부모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문화예술교육 활동 시 어려움으로 ‘장애특성 맞춤형 교육, 활동의 부족’(22.3%)을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프로그램 수, 기회의 부족’(17.6%) ‘교통, 이동수단의 불편함’(16.5%) 등의 순이었다. 안유민 진흥원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추진단 태스크포스(TF) 팀장은 “기존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에서 더 나아가 장애인의 고유성과 신체 및 감각적 특성을 존중하는 비대면 문화예술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진흥원은 발달, 시각, 청각장애 유형별로 표현 방식의 특성을 반영한 비대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장애인은 물론 장르별 예술가와 장애인 전문 예술가도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진흥원은 이달 중 발달장애인 3종, 시각 및 청각장애인 각 2종 등 총 7종류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 장애인 가정과 시설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호랑이 권법#장애인#맞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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