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댄서, 명작의 주인공이 되다[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김민기자 입력 2021-10-23 11:00수정 2021-10-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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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물랑루즈에 들어서는 라 굴뤼’ 그 누구보다 우리 팀이 최고라고 자신하고, 무대 위에선 세상의 주인공처럼 최선을 다하며, 내려와서 받는 냉혹한 평가엔 눈물은 흘리되 인정하는….

여성 댄서들의 경쟁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요즘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가수를 빛내주는 이름 없는 존재였던 댄서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면서 K팝이 화려한 꽃을 피우기까지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이 있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댄서를 전문성을 가진 아티스트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는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서야 춤 동작부터 콘셉트와 무대 기획까지 해야 하는 종합 예술임을 보게 된 듯 한데요.

약 150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예술가는 이 댄서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대중문화라는 개념도 없던 이 시절에 댄서는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취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보다 훨씬 더 과감한 선택인 셈인데요. 그 예술가의 그림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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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의 여왕, 라 굴뤼





물랑루즈 포스터로도 유명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입니다.

그림 가운데 여성의 표정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검은 옷들 가운데 밝게 눈에 띄는 흰 드레스와 가슴에 달린 꽃, 살짝 치켜 든 고개와 도도한 표정이 인상적이죠. 이 여성의 양 쪽에는 다시 두 명의 여성이 팔짱을 끼고 그녀를 이끌고 있습니다. 마치 파파라치가 스타를 기다리다 순간 포착한 듯 움직이는 율동감도 돋보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물랑루즈에서 ‘라 굴뤼’(La Goulue·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댄서 루이즈 웨버(1866~1929)입니다.

1890년 경 ‘라 굴뤼.’


그녀는 사진 속에서처럼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관객의 머리를 넘기는 등 과감한 댄스로 물랑루즈를 휘어잡았습니다. ‘라 굴뤼’라는 별명은 춤을 추면서 관객의 테이블에 있는 술을 모조리 먹어 치우곤 했기 때문에 붙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그녀의 대담함과 거친 성격이 로트렉의 그림에서 오히려 더 생생히 드러나죠?

물랑루즈 안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 같은 도도함과 당당함. 그녀는 실제로도 그런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거슬 맥(Gerstle Mack)이 쓴 로트렉 전기에는 당시 유명 가수인 이베트 길베르가 라 굴뤼에 대해 말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파리의 국제 경마 대회인 그랑프리의 갈라 디너가 있던 어느 날, 라 굴뤼는 이곳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는 파리 상류층 인사들은 물론 영국 왕세자 에드워드 7세도 참석했습니다.

에드워드 7세의 존재를 알고 있던 라 굴뤼는 그의 테이블 앞에서 놀리듯 치마를 들어올리며 열정적으로 춤을 췄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큰 목청으로 “어이 왕세자씨! 우리한테 샴페인 한 잔 대접 하시죠?”라고 외쳤다고 하네요.

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라 굴뤼의 무례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헉!’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염려와 달리 왕세자는 화내지 않고 큰 웃음을 터뜨린 뒤 라 굴뤼를 비롯한 댄서들에게 술을 주문해주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왕족 앞에서도 기죽지 않으니 ‘물랑루즈의 여왕’이라 불릴 만 했던 사람이었죠.




이런 일화를 보고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그는 라 굴뤼를 어느 순간에 보고 묘사한게 아니라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표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트렉도 이 그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1년 동안 4번이나 전시를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가 그린 많은 라 굴뤼의 그림 중 가장 그녀를 잘 표현한 그림일 듯합니다. 로트렉은 왜 라 굴뤼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걸까요?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귀족, 로트렉


로트렉이 그린 물랑루즈의 라 굴뤼 공연 홍보 포스터.


라 굴뤼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6살 엄마를 따라 세탁부로 일했습니다. 손님들의 화려한 옷을 몰래 입어보곤 했던 그는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몽마르트로 향합니다. 이곳의 술집에서 춤을 추다 유명 댄서의 눈에 띄어 커리어를 시작했죠.

로트렉의 삶은 라 굴뤼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그는 프랑스 툴루즈 지역의 오랜 지주 가문 출신으로,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공작 칭호를 물려받을 예정이었고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업 능력도 우수했지만 10대 초반부터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는 13살 때 오른쪽 다리, 14살 때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부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상체는 정상적으로 자랐지만, 하체는 14살 때의 그대로인 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로트렉의 전기 작가들은 그의 부모가 친척 관계였기 때문에 유전적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친척 간 결혼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1894년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가게 된 로트렉은 다른 취미는 모두 포기하고,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던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파리에 살면서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 머무르며 예술가들은 물론 댄서와 술집 주인, 창녀들과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귀족 사회의 ‘트랙’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서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트렉의 동질감은 단순한 관찰이나 연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좋아했던 그의 성격이 파리라는 도시의 ‘무법지대’인 몽마르트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로트렉은 댄서들도 구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감각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전 댄서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용된) 모델들은 인형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물랑루즈의 여성들은 살아 있어요. 그들을 그리기 위해 나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겁니다. 그들은 소파 위에서도 마치 동물처럼 살아 움직입니다.”

●서로를 지지하며 ‘인사이더’가 되다


로트렉이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은 실제 일화로도 확인 됩니다.

라 굴뤼가 ‘물랑루즈의 여왕’으로 군림한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절제할 줄 몰랐던 그녀는 금방 춤을 추기엔 너무 무거운 몸이 되어 버리는데요. 인기가 떨어지자 라 굴뤼는 개인 회사를 차려 물랑루즈 밖에서 춤을 선보이기로 합니다.

부스를 차려 춤을 추고 관객을 모으기로 한 라 굴뤼는 로트렉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부스를 꾸밀 커튼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로트렉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멋진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덕분에 부스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라 굴뤼는 다른 지역에서도 부스를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95년 라 굴뤼가 차린 부스. 출입문 양 옆에 로트렉의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로트렉은 이렇게 자신이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벨기에의 한 저녁 자리에서 한 예술가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비난하자, 결투 신청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때 같은 자리에 있던 폴 시냑도 로트렉이 결투에서 죽게 되면 자신이 이어서 싸우겠다며 고흐를 옹호했습니다. 결국 그 예술가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다만 지팡이 속에도 술을 항상 넣어 다닐 정도로 음주를 즐겼던 로트렉은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예술 세계를 세상에 더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준 것도 그의 모친과,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우범지대였던 몽마르트의 불량스러운 댄서와 창녀를 그린 로트렉에 대한 비난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프랑스와 독일의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옹호하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독일 비평가 율리우스 엘리어스는 로트렉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주간지에 “사회의 변두리에서 로트렉은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 자신의 삶을 찾았다”며 그를 비난하는 사회는 얼마나 순수한지를 되물었습니다. 또 전기 작가 거슬 맥은 몽마르트의 아웃사이더를 담은 로트렉의 그림은 ‘시각적 고발’이라고 분석합니다. 신체적 장애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는 것이지요.

로트렉이 사회 고발까지 염두에 두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때로 너무나 경직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틀에 가두고 규범을 강조하는 사회의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댄서들에게 그는 매료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을 정직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결과, 그 자신은 물론 댄서 라 굴뤼까지 100년이 넘어서도 기억되는 존재로 그는 만들어주었습니다. 서로를 지지해 준 아웃사이더들이 결국엔 ‘인사이더’가 된 것이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내가 가치를 알아보는 존재에게 편견 없이 따스한 애정을 보내주고 지지해주는 것. 바로 여기에서 로트렉의 솔직하고 대담한 그림의 감동이 피어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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