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폄하 논란 ‘일본서기’에 무령왕 탄생 비밀 풀 열쇠가?

이기욱 기자 입력 2021-10-21 03:00수정 2021-10-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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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일본서기 중심 뿌리 추적
“일부 기록 왜곡됐지만, 백제 모습은 생생”
일본 후쿠오카현 이토시마. 정재윤 공주대 교수는 이곳을 무령왕 탄생지로 본다. 이곳은 간척사업 전까지는 섬이 많았는데, 1889년 이전까지 무령왕 이름(사마)과 유사한 ‘시마’로 불렸다. 이토시마시 홈페이지
일본서기(書紀)에 따르면 461년 4월 백제 개로왕은 동생 곤지에게 일본에 갈 것을 명했다. 이에 곤지는 형의 임신한 부인을 주면 가겠노라고 답한다. 개로왕은 이를 허락하며 자신의 부인이 해산하면 즉시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아이는 훗날 백제 25대왕 무령왕이 됐다. 한때 국내 학계는 곤지의 이 같은 비상식적 요구를 전하는 일본서기 기록을 백제 폄하를 위한 조작이라고 봤다. 특히 일본서기는 5세기 이전 사건들의 발생연도를 실제보다 약 120년 앞당겨 기록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료 속 진실은 무엇일까.

올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관련 전시와 신간이 잇따르고 있다. 이 중 정재윤 공주대 교수(사학)가 최근 펴낸 신간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푸른역사)는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무령왕의 탄생을 추적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무령왕이 개로왕 혹은 곤지의 아들이라는 기록을 담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본다.

이에 대해 국내 고대사학계는 무령왕이 개로왕 혹은 곤지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을 계기로 무령왕의 나이가 확인됐는데, 이에 따르면 동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당시인 479년에 무령왕은 이미 18세였기 때문이다.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이 잘못된 게 밝혀진 것. 정 교수는 신간에서 일본서기의 백제신찬 기록에 근거해 무령왕을 곤지의 아들로 보고 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무령왕의 친부로 보이는 곤지는 왕위 계승을 하지 못했다.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개로왕의 아들로 내세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간은 무령왕의 뿌리와 더불어 그의 탄생지도 추적한다. 일본서기는 ‘각라(各羅)의 바다 가운데 주도(主嶋)가 있는데, 왕이 태어난 섬이라 백제인들이 주도라고 부른다’는 백제신찬 내용을 전하고 있다. 무령왕이 현재의 일본 규슈 사가현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국내 학계 다수설도 이곳을 무령왕 탄생지로 본다. 이 섬에는 무령왕이 태어난 동굴로 전해지는 오비야무라(オビヤ浦)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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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정 교수는 “각라의 바다(海)를 일본서기 편찬자가 섬으로 오인했다”며 다수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각라는 섬이 띠처럼 둘러진 모양을 뜻하는 말로, 섬이 많은 후쿠오카현 이토시마((멱,사)島) 지역이 무령왕 탄생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 이토시마는 1889년 일본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무령왕 이름인 사마와 유사한 시마(志摩)로 불렸다. 경남 김해에서 쓰시마섬, 이키(壹岐)섬을 거쳐 후쿠오카로 향한 곤지의 항로도 감안했다.

일본서기를 신간의 중심 사료로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정 교수는 “무령왕 탄생 기록을 전하는 사서는 일본서기뿐이다.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 안 된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는 당시 모습을 비교적 생생히 담고 있다”며 “일부 기록이 왜곡된 사실을 유념하면서 적확한 정보를 취하면 백제의 본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백제 폄하 논란#일본서기#무령왕 탄생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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