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가 거문고 비트에 랩을… 전자음악으로 되살아난 국악의 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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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에 전자음악 샘플링 해보니…
국립국악원 디지털 음원 서비스, 9개월간 약 1만3000회 다운로드
전자음악가 소월 작업실 찾아 국악기 변형해 리듬 만들고
안숙선 명창의 추임새 믹스… “다양한 대중음악에 활용 가능”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에서 추임새와 아니리를 녹음한 이춘희 명창의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에서 추임새와 아니리를 녹음한 이춘희 명창의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이달 10일 국립국악원이 홈페이지에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놨다. 안숙선, 이춘희 등 명창들의 ‘얼씨구!’ ‘으이!’ 같은 추임새와 아니리를 짧은 음원 파일 2800개로 나눠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해 9월 내놓은 국악기 단음(短音) 407개, 악구(樂句) 2226개까지 하면 5000여 개의 고급 국악 ‘소스’가 무료 배포된 것. 국악원은 “케이팝, 대중음악, 유튜브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급 소식을 전자음악가 소월(본명 이소월·35)에게 먼저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 음악 소프트웨어 ‘에이블턴’이 주최한 국제 행사에 한국인 최초로 연사로 초청된 실력가, ‘핑거 드러밍’ 장인, 전직 재즈 드러머.

서울 강서구 작업실에서 국립국악원의 ‘국악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전자음악가 소월. 그는 “공연 전 국악인을 만나 협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음원이 잘 나와 있다. 이 서비스가 대중음악계에 상상 이상의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강서구 작업실에서 국립국악원의 ‘국악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전자음악가 소월. 그는 “공연 전 국악인을 만나 협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음원이 잘 나와 있다. 이 서비스가 대중음악계에 상상 이상의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월은 왜 이제 알려주냐는 듯 반겼다. 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23일 찾았다. 톰 요크(라디오헤드) 포스터가 붙은 벽 아래에서 켄드릭 라마 앨범 표지를 바탕화면에 띄워둔 컴퓨터를 소월이 켰다.

먼저 국악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악구’-‘성악’-‘여창’ 섹션을 차례로 클릭했다. 안숙선의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골라 여러 구절의 음원을 내려받았다. ‘에이블턴 라이브’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받은 음원에서 ‘춘향이가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니는 소싯적에…’ ‘오날(오늘)같이 즐거운 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같은 악구를 디지털로 더 잘게 쪼개 여기저기 콜라주했다. 전문 용어로 ‘찹(chop)’ 기법.

이번엔 징 소리를 내려받을 차례. ‘징∼’ 하는 음파를 샘플러에 넣고 고음역대를 필터로 깎아낸 뒤 다이내믹 계열 이펙터로 저음역을 더 부각시켰다. 듣자니 꽤 몽롱했다. 리듬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정글 뮤직’풍의 비트를 입히니 가히 전북 남원의 광한루가 영국 런던의 지하 클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음악이 딱 멈춘 말미에 ‘…어쩔라고 그러시오∼’를 붙이자 ‘코믹 계몽 음악극’이 완성됐다.

재미가 드니 속도가 붙었다. 이주은 명창의 ‘자진모리방자분부듣고1’ 파일을 내려받았다. 이번엔 자진모리 가야금 샘플도 변형해 넣어보기로 했다.

“가야금 소리가 정말 잘 녹음됐네요. 소리의 길이를 늘인 다음, 소리 입자 크기를 ‘랜덤’으로 변형해 뽑았습니다.”(소월)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하는 소리에 거문고와 징 소리를 변형해 만든 ‘무그 베이스(moog bass)’ 사운드를 까니 당장 랩을 얹고픈 매력적 미디엄 템포가 됐다. 토핑 삼아 안숙선 명창의 ‘으이!’ ‘하이 그렇지∼’를 얹으니 금상첨화.

소월은 “씽씽, 이날치 신드롬 이후 대중음악가들의 국악에 대한 갈증이 많아진 시기”라면서 “가르치는 학생들(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도 국악기 샘플을 보내주실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한 바 있다. 명창, 명연주자들이 좋은 음질로 녹음한 음원인 만큼 향후 대중음악에서 잘 활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단, 내려받은 뒤 파일명이 원래 제목을 알아볼 수 없게 형성되는 것, 한 번에 최대 10개까지만 내려받을 수 있는 것은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국립국악원 장악과의 이승재 팀장은 “앞서 악기 음원은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약 1만3000회 다운로드됐다. 용도와 사용처를 물은 결과 대학, 각종 콘텐츠 제작사, 개인 유튜버 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립국악원#국악#전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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