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총독부 벽화 속 나무꾼이 70년간 통곡한 까닭은…

정경준 기자 입력 2020-10-17 10:30수정 2020-10-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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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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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완공된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중앙 홀. 위쪽 점선으로 표시한 반원형 벽화는 당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이 일본의 서양화가 와다 산조에게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조선과 일본이 같은 뿌리라는 ‘동조동근’을 상징하는 것이다.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1920년 어느 날, 일본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와다 산조는 신청사 중앙 홀의 천장과 맞닿는 벽에 설치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총독부의 의뢰를 받습니다. 이후 일본의 고고학자, 역사학자들까지 초빙해 몇 차례 화제(畫題) 선정회의를 하죠.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은 이들에게 “총독정치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주제를 찾으라”면서 특히 “일본과 조선이 같은 땅이라는 점을 강조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총독부 중앙 홀 북쪽 벽 벽화. 우리의 전래 설화인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해서 그렸다. 1996년 건물을 해체하면서 철거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다 2014년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에서 다시 공개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천지를 창조하는 단군과 스사노오(일본신화에 나오는 신), 서로 힘을 합쳐 바벨탑을 쌓는 조선인과 일본인, 꽃 피고 새 우는 극락에서 뛰노는 양 국민과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고심 끝에 낙점된 화제는 두 나라에 공통된 선녀승천 설화를 그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에 ‘선녀와 나무꾼’이 있다면 일본엔 나무꾼 대신 늙은 어부가 등장하는 ‘하고로모(羽衣)’ 설화가 있다는 데 착안한 거죠.

총독부 중앙 홀 남벽에 설치됐던 ‘하고로모’ 벽화. 자신의 옷을 늙은 어부에게 빼앗긴 선녀가 이를 되돌려 받고 천상의 춤을 추며 하늘로 날아올라 후지산 근처에서 사라졌다는 일본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자들과 함께 여러 해 작업한 끝에 와다는 신청사 준공 직전인 1926년 9월 반원형 벽화 두 점을 완성합니다. 각각 가로 11.5m, 세로 4.3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었죠. ‘선녀와 나무꾼’은 총독부 청사 중앙 홀 북벽에, ‘하고로모’는 마주보는 남벽에 설치됐습니다. 이후 이 한 쌍의 벽화는 1996년 총독부 건물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70년 동안이나 이 자리에서 일제의 일관된 조선통치 이데올로기, 즉 양국은 뿌리가 같다는 동조동근(同祖同根), 나아가 내선(內鮮)융합,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동화주의는 무단통치의 대명사인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들고 나온 말이지만, 그 후 사이토를 총독으로 발탁한 일본 하라 내각도 거의 의미가 같은 내지연장주의를 신봉했습니다. 일본과 똑같은 제도를 조선에 들여와 안정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니 얼핏 평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갈수록 심해졌고, 동화주의는 단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데 악용될 뿐이었죠.

창간 이후 지속적으로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를 비판한 동아일보는 1922년 8월 16일자 사설 ‘조선인의 흉중’에서 한층 강도를 높였습니다. 먼저 일본의 정치가들을 향해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이성과 지혜가 우수하고, 무사도의 전통을 이어 정의롭다”고 추켜세운 뒤 “그런데도 ‘조선인을 성심성의로 대하고 조선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니 과연 우리의 흉중을 살핀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어 “동화주의니, 내지연장주의니 해서 우리의 장구한 4000년 역사와 우리만의 문화를 버리라 하는 건 모멸의 극치”라고 질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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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자 ‘횡설수설’도 일선(日鮮)융화는 역사적으로 보아 도저히 불가능하고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의 대세가 됐다는 요지의 논문을 실은 일본 잡지를 인용한 뒤 이런 주장을 하는 꽤 많은 일본인들을 ‘불령(不逞) 일본인’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독립을 외치는 조선인을 ‘불령선인’이라 해 박해하는 일제를 정면으로 비난한 거죠. 총독부는 이 두 기사 모두 압수했습니다.

재임 5년 9개월 동안 조선민족의 육체와 정신을 착취한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그는 전임자들이 내세웠던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의 극단적 형태인 ‘내선일체’를 구호로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징병제 등을 강요했다.


‘같은 뿌리’를 강조한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는 ‘조선의 히틀러’라 불린 7대 총독 미나미 지로의 ‘내선일체’로 연결됩니다. 조선과 일본이 융화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극단적으로 한 몸이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에 따라 조선 민중들은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했고, 우리말을 쓸 수도 없었으며,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이 격화하면서 ‘일본국민의 자격으로’ 군대에 지원하고, 끌려가야 했습니다. 이랬던 미나미가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라면서 조선과 일본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조선인’ 대신 ‘반도인’을 쓰라고 했다니 영문도 모르는 채 총독부 벽화에 쓰인 우리 나무꾼이 통곡할 일입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원문
朝鮮人(조선인)의 胸中(흉중)

嚴肅(엄숙)한 沈黙(침묵)

日本(일본) 政治家(정치가)여, 公(공) 等(등)은 果然(과연) 朝鮮人(조선인)의 胸中(흉중)을 察乎(찰호)아, 否乎(부호)아.

이제 公(공) 等(등)은 朝鮮(조선)을 掌中(장중)에 保有(보유)한지 임의 十有餘年(십유여년)이라 勿論(물론) 其(기) 間(간)에 公(공) 等(등)은 充分(충분)한 報告(보고)와 洽足(흡족)한 材料(재료)로 朝鮮人(조선인)의 心事(심사)를 少毫(소호)의 遺憾(유감)이 업시 硏究(연구)하며 調査(조사)하얏슬 것이니 이를 察(찰)치 못한다 하기 勿論(물론) 不能(불능)하며,

또한 公(공) 等(등)은 吾人(오인)보다 歐米(구미)의 文化(문화)를 四五十年(사오십년)이나 先(선)에 受(수)하야 理知(이지)는 벌서 優秀(우수)한 發展(발전)을 得(득)하얏스며 心情(심정)은 벌서 醇美(순미)한 發達(발달)을 遂(수)하얏고 道德(도덕)이나 習俗(습속)은 임의 文明人(문명인)의 極致(극치)를 表(표)하얏나니 그 理知(이지)와 心情(심정)과 그 道德(도덕)으로 엇지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察(찰)함애 何等(하등)의 不足(부족)과 何等(하등)의 未洽(미흡)이 잇스며,

그 뿐 아니라 公(공) 等(등)은 六七百年(육칠백년) 間(간)의 武士道(무사도)에 對(대)한 遺風(유풍)과 餘韻(여운)을 承受(승수)한지라 비록 利(이)에 迷(미)하야 義(의)를 모르는 것이 常人(상인)의 心事(심사)라 할지라도 그러한 傳受(전수)와 先風(선풍)이 잇는 公(공) 等(등)으로서는 利益(이익)의 觀念(관념)이 또한 公(공) 等(등)으로 하야금 吾人(오인)의 心情(심정)을 斟酌(짐작)함에 何等(하등)의 妨害(방해)를 與(여)치 못할 것이며,

이 저것은 다 그만 두고라도 公(공) 等(등)의 聰明(총명)은 임의 人(인)에 超(초)하야 秀(수)하얏스며 公(공) 等(등)의 良心(양심)은 또한 人(인)에 絶(절)하야 發達(발달)하얏고, 그 뿐 아니라 公(공) 等(등)의게도 血(혈)이 잇고 淚(루)가 잇거니 엇지 그 聰明(총명), 그 良心(양심), 그 血(혈), 그 淚(루)를 가지고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想(상)하고 察(찰)함애 何等(하등)의 遺憾(유감)이 잇스리오. 그런 즉 公(공) 等(등)의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察(찰)하얏슬 것이 또는 察(찰)할 것이 明且審矣(명차심의)오, 正且確矣(정차확의)로다.

그러나 吾人(오인)은 疑惑(의혹)이 不無(불무)하노니 公(공) 等(등)의 朝鮮(조선)에서 行(행)하는 政治(정치)와 政策(정책)을 보아 그러하며, 公(공) 等(등)의 吾人(오인)의게 對(대)하야 取(취)하는 바 態度(태도)를 보아 또한 그러하노라|

만일 公(공) 等(등)이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充分(충분)히 想察(상찰)하얏다 하면 吾人(오인)의게도 廉恥(염치)가 잇고 心膓(심장)이 잇는 것은 勿論(물론) 吾人(오인)의게도 四千年(사천년) 歷史(역사)가 잇고 優秀(우수)한 文化(문화)가 잇스며 堂堂(당당)한 良心(양심)이 잇고 赫赫(혁혁)한 義理(의리)의 觀念(관념)이 잇는 것을 또한 充分(충분)히 知得(지득)하얏슬 것이니,

이것을 知得(지득)한 政治家(정치가)로서는 今日(금일) 朝鮮(조선)에서 見(견)하는 것과 갓흔 政治(정치)나 政策(정책)을 敢(감)히 吾人(오인)의케 施(시)치 못할 것이며, 今日(금일) 日本人(일본인)이 朝鮮人(조선인)의게 取(취)하는 바와 갓흔 態度(태도)를 또한 敢(감)히 吾人(오인)의게 持(지)치 못할 것이어늘 公(공) 等(등)은 能(능)히 이것을 하고 能(능)히 이것을 取(취)함을 볼 때에 吾人(오인)은 公(공) 等(등)의게 向(향)하야 公(공) 等(등)은 果然(과연) 朝鮮人(조선인)의 胸中(흉중)을 察(찰)하는가 하고 뭇고십허지노라.

公(공) 等(등)은 툭하면 吾人(오인)을 向(향)하야 『日本人(일본인)은 朝鮮人(조선인)의 幸福(행복)을 增進(증진)키 爲(위)하야 莫大(막대)한 勞力(노력)을 虛費(허비)하는 터인 즉 朝鮮人(조선인)은 頗(파)히 其(기) 恩惠(은혜)를 感泣(감읍)할지라』 하는 도다. 그러나 이 엇지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察(찰)한 者(자)의 言(언)이랴. 嗚呼(오호)라, 吾人(오인)이 아모리 頑冥(완명)하기로 恩惠(은혜)의 槪念(개념)을 不知(부지)하는 者(자)리오. 만일 眞正(진정)의 恩惠(은혜)가 그런 것이라 하면 吾人(오인)은 寧(녕)히 一時(일시)라도 恩惠(은혜)의 가운데 잇기를 不肯(불긍)하리라.

또한 公(공) 等(등)은 吾人(오인)을 向(향)하야 『誠心誠意(성심성의)로 朝鮮人(조선인)의게 臨(임)하노라』 하나니 吾人(오인)은 『吾人(오인)을 何物(하물)노 思了(사료)하나뇨』하고 反問(반문)하고 십도다. 吾人(오인)이 아모리 辨別力(변별력)이 兒孩(아해)만 하기로 人(인)의 誠心(성심)과 誠意(성의)를 理解(이해)치 못하는 者(자)리오. 그러나 만일 誠意(성의)가 亦是(역시) 그런 것이라 하면 吾人(오인)은 永遠(영원)히 그란 誠意(성의)를 謝絶(사절)코저 하노라.

또한 公(공) 等(등)은 每樣(매양) 『同化主義(동화주의)』니 『內地延長主義(내지연장주의)』니 무슨 主義(주의) 무슨 主義(주의) 하나니 此(차)에 至(지)하야는 朝鮮人(조선인)을 侮蔑(모멸)함이 甚(심)하고 또한 公(공) 等(등)도 誤(오)함이 甚(심)치 아니한가. 公(공) 等(등)이 아모리 吾輩(오배) 朝鮮人(조선인)을 輕視(경시)하기로 如此(여차)한 沒廉恥(몰염치)한 傍若無人(방약무인)의 橫暴(횡포)한 말을 엇더케 忍(인)하야 言(언)하며 敢(감)히 吐(토)하나뇨.

噫(희)라. 今日(금일) 朝鮮人(조선인)이 아모리 一時(일시)의 衰微(쇠미)를 極(극)하얏다 할지라도 적어도 吾人(오인)의게는 四千年(사천년)의 長久(장구)한 歷史(역사)와 一定(일정)한 言語(언어), 一定(일정)한 文定(문정), 一定(일정)한 風俗(풍속), 一定(일정)한 傳統(전통), 一定(일정)한 道德(도덕)의 完全(완전)한 文化(문화)가 잇지 아니한가. 이러한 人民(인민), 이러한 民族(민족)에게 向(향)하야 人民(인민)은 先存(선존)한 歷史(역사)나 文化(문화)를 忘(망)하며 棄(기)하고 他(타)의 歷史(역사)나 文化(문화)에 化(화)하라 하니 이 엇지 大膽(대담)하고 無謀(무모)한 橫暴(횡포)가 아니며, 吾儕(오제)에 對(대)한 侮蔑(모멸)의 極(극)함이 아닌가.

그러나 吾人(오인)은 이제 吾人(오인)의 胸中(흉중)을 公(공) 等(등)에게 알니고저 하지도 아니하노라. 또한 吾人(오인)이 公(공) 等(등)에게 向(향)하야 何(하)를 言(언)하며 何(하)를 論(론)하리오. 만일 吾人(오인)에게 言(언)할 배 잇고 論(론)할 배 잇다 하면 吾儕(오제) 各自(각자)가 호을노 알고 호을노 訴(소)할 뿐이로다. 그러기에 吾人(오인)에게는 오직 嚴肅(엄숙)한 沈黙(침묵)이 잇슬 뿐이로다.

日本(일본) 政治家(정치가)여, 公(공) 等(등)이 만일 記憶(기억)이 잇거든 過去(과거) 十年事(십연사)를 가만이 追考(추고)하라|. 年前(연전)에 騷擾事件(소요사건)을 除(제)한 以外(이외)에 일즉이 吾儕(오제) 朝鮮人(조선인)이 何時(하시)에 이 『沈點(침점)』의 態度(태도)를 改(개)한 때가 有(유)하얏스며, 또한 이러한 心約(심약)을 破(파)한 때가 有(유)하얏드뇨.

近日(근일)도 日本(일본) 政治家(정치가)로서 朝鮮(조선)을 特(특)히 來訪(내방)하는 者(자) 中(중)에 吾人(오인)에게 向(향)하야 現時(현시)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한 批評(비평)을 求(구)하는 이가 多(다)하도다. 그 中(중)에는 人(인)을 隨(수)하야 물으며 求(구)하는 內容(내용)이 또한 一致(일치)치 아니하도다. 或(혹)은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한 感想(감상)이 如何(여하)하뇨』하는 者(자)도 잇고, 或(혹)은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한 不平(불평)과 不滿(불만)이 무엇이뇨』하는 者(자)도 잇고, 또 或(혹)은 『總督政治(총독정치)에도 改善(개선)할 것이 不無(불무)할진즉 如何(여하)한 點(점)이 改善(개선)할 것이뇨』하는 者(자)도 잇도다.

그러나 吾人(오인)이 此(차)에 對(대)하야 何(하)로써 答(답)하며 何(하)로써 陳(진)하리오. 그럼으로 如此(여차)한 質問(질문)을 受(수)할 時(시)마다 簡單(간단)하게 『우리는 別(별)노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하야 感(감)한 것도 업고 따라서 不平不滿(불평불만)도 無(무)하고 改善(개선)할 點(점)도 思考(사고)한 것이 別無(별무)하노라』하고 答(답)할 뿐이엇노라.

그러나 吾人(오인)이 엇지 果然(과연) 政治(정치)에 對(대)하야 何等(하등)의 批評眼(비평안)을 具有(구유)치 못한 者(자)며, 또한 何等(하등)의 要求(요구)와 主張(주장)을 抱持(포지)치 안은 者(자)리오. 또한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하야 何等(하등)의 意見(의견)과 何等(하등)의 不平(불평)이 無(무)한 者(자)리오. 오직 그 意見(의견)을 吐(토)할 眞正(진정)한 機會(기회)가 無(무)하며, 또한 그 施(시)할 眞正(진정)한 餘地(여지)가 無(무)한지라. 그런 故(고)로 무엇을 開口(개구)하야 論(논)하는 것보다는 寧(녕)히 沉黙(침묵)을 守(수)하야 言(언)이 無(무)함만 不如(불여)한 故(고)라.

嗚呼(오호)라 果然(과연)이로다. 吾儕(오제) 朝鮮人(조선인)이 今日(금일)의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하야 何(하)를 言(언)하며 何(하)를 論(논)하리오. 再言(재언)하거니와 吾儕(오제)의게는 오즉 『沈黙(침묵)』이 有(유)할 뿐이로다.

그러나 日本(일본) 政治家(정치가)여, 公(공) 等(등)은 此(차) 朝鮮人(조선인)의 『沈黙(침묵)』을, 嚴重(엄중)하고 莊重(장중)한 謎(미)와 如(여)한 『沈黙(침묵)』을 如何(여하)히 思(사)하나뇨. 公(공) 等(등)이 이제 만일 吾儕(오제)의게 向(향)하야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한 眞實(진실)한 批評(비평)을 듯고저 할진대 몬저 公(공) 等(등)의 聰明(총명)이 이 無言(무언)의 雄辯(웅변)인 『朝鮮人(조선인)의 沈黙(침묵)』을 洞觀(동관)할 能力(능력)이 잇는가를 卜(복)할진저.
현대문
조선인의 흉중

엄숙한 침묵

일본 정치가여, 그대들은 과연 조선인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살피는가, 살피지 않는가.

이제 그대들이 조선을 손에 넣은 지 이미 10여 년이 흘렀다. 물론 그 사이에 그대들은 충분한 보고와 흡족한 재료를 바탕으로 조선인의 심사를 털끝만큼의 미진한 점 없이 연구하며 조사했을 것이니 조선인의 흉중을 살피지 못한다 할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그대들은 우리보다 40, 50년이나 먼저 유럽 문화를 받아들여 이성과 지혜는 벌써 우수한 발전을 보았으며, 심정은 순후하고 아름다울 정도로 발달을 이뤘고, 도덕이나 습속은 이미 문명인의 극치를 나타냈으니 그 이지와 심정과 도덕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관찰하는 데 무슨 부족과 미흡이 있겠는가.

그 뿐 아니라 그대들은 600, 700년간 무사도의 전통과 여운을 이어받았지 않은가. 따라서 비록 잇속에 미혹돼 정의를 모르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사라 해도 선대의 무사도 풍습을 물려받은 그대들로서는 이익의 관념이 그대들로 하여금 우리의 심정을 짐작케 하는 것을 조금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라도 그대들의 총명함은 이미 사람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빼어나며, 그대들의 양심 또한 보통 사람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달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그대들에게도 피와 눈물이 있거늘 어찌 그 총명, 그 양심, 그 피눈물을 갖고 우리의 흉중을 헤아리고 관찰하는 데 하등의 미진함이 있겠는가. 그런 즉 그대들이 우리의 마음속을 살폈을 것, 또는 살필 것임은 밝고 환한 일이요, 바르고 확실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대들이 조선인의 흉중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는지에 대해 의혹이 없지 않다. 그대들이 조선에서 행하는 정치와 정책을 봐도 그렇고, 그대들이 우리에게 취하는 태도를 봐도 또한 그렇다.

만일 그대들이 우리의 흉중을 충분히 생각해 헤아렸다면 우리에게도 염치가 있고 심장이 있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도 4000년 역사가 있고 우수한 문화가 있으며 당당한 양심이 있고 혁혁한 의리의 관념이 있는 것을 또한 충분히 알았을 것인데,

이를 알아차린 정치가는 오늘날 조선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치나 정책을 감히 우리에게 시행하지 못할 것이며, 오늘날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취하는 것과 같은 태도 또한 감히 우리에게 갖지 못할 것이거늘, 그대들이 능히 이를 행하고 능히 이를 취함을 볼 때 우리는 그대들을 향해 그대들은 과연 조선인의 흉중을 살피고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그대들은 툭하면 우리에게 “일본인은 조선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하는 터이니 조선인은 그 은혜에 매우 감읍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우리의 흉중을 살핀 자의 말이겠는가. 슬프다, 우리가 아무리 완고하고 미욱하기로서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겠는가. 만일 진정한 은혜가 그런 것이라 하면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편안하게 은혜의 가운데 있기를 즐길 수 없도다.

그대들은 또 우리에게 “성심성의로 조선인에게 임하고 있다”하니 우리는 “우리를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는가”하고 반문하고 싶다. 우리가 아무리 변별력이 아이와 같기로서니 사람의 성심과 성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대들의 성의가 역시 그런 것이라 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런 성의를 사절하고자 한다.

또 그대들은 매번 ‘동화주의’니 ‘내지연장주의’니 무슨 주의, 무슨 주의 하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조선인을 모멸함이 극심하고 또한 그대들도 잘못함이 심하지 않은가. 그대들이 아무리 우리 조선인을 경시하기로서니 이처럼 몰염치하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횡포한 말을 어떻게 차마 말하며, 감히 내뱉는가.

슬프다. 오늘날 조선인이 아무리 일시적으로 쇠퇴하고 미약해졌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에겐 4000년의 장구한 역사와 일정한 언어, 일정한 시호, 일정한 풍속, 일정한 전통, 일정한 도덕을 갖춘 완전한 문화가 있지 않은가. 이런 인민, 이런 민족에 대해 인민은 선조의 역사와 문화를 잊고, 버리고 다른 역사나 문화에 동화하라 하니 이 어찌 대담하고도 무모한 횡포가 아니며, 우리네에 대한 모멸의 극치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흉중을 그대들에게 알리고자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논하겠는가. 만일 우리에게 말할 바가 있고, 논할 바가 있다 하면 우리네 각자가 홀로 알고 홀로 하소연할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오직 엄숙한 침묵만 있을 뿐이다.

일본 정치가여, 그대들이 만일 기억할 수 있다면 과거 10년 일을 가만히 돌이켜보라. 연전 3·1만세운동을 빼고는 일찍이 우리 조선인이 언제 이 침묵하는 태도를 바꾼 적이 있었으며, 또한 이런 마음의 약속을 깨뜨린 적이 있었는가.

최근에도 조선을 특별히 내방하는 일본 정치가 가운데 우리에 대해 현 총독정치에 대한 비평을 구하는 이가 많다. 사람에 따라 묻고 구하는 내용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혹은 “총독정치에 대한 감상이 어떠냐”는 자도 있고, 혹은 “총독정치에 대한 불평불만이 무엇이냐”하는 자도 있고, 또 혹은 “총독정치에도 개선할 것이 없지 않을 것이니, 어떤 점을 개선하는 게 좋겠느냐”묻는 자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대해 무슨 답을 하며, 무엇을 늘어놓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간단하게 “우린 총독정치에 대해 별로 느낀 것이 없다. 따라서 불평불만도 없고, 개선할 점도 생각한 것이 그다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 과연 정치에 대해 어떠한 비평의 안목을 갖추지 못한 자이며, 또 아무런 요구와 주장을 품고 있지 않은 자이겠는가. 또한 총독정치에 대해 조금의 의견과 불평이 없는 자이겠는가. 오직 그 의견을 토로할 진정한 기회가 없으며, 또 그것을 드러낼 진정한 여지가 없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입을 열어 무엇을 논하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을 지켜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아아! 과연 그렇다. 우리네 조선인이 오늘날의 총독정치에 대해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논하겠는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에겐 오직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가여, 그대들은 이 조선인의 ‘침묵’을, 엄중하고 장중한 수수께끼와 같은 ‘침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이제 만일 우리로부터 총독정치에 대한 진실한 비평을 듣고자 한다면 먼저 그대들의 총명이 이 무언의 웅변인 ‘조선인의 침묵’을 꿰뚫어 볼 능력이 있는가를 깊이 헤아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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