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총독부 벽화 속 나무꾼이 70년간 통곡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7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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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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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완공된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중앙 홀. 위쪽 점선으로 표시한 반원형 벽화는 당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이 일본의 서양화가 와다 산조에게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조선과 일본이 같은 뿌리라는 ‘동조동근’을 상징하는 것이다.
1926년 완공된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중앙 홀. 위쪽 점선으로 표시한 반원형 벽화는 당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이 일본의 서양화가 와다 산조에게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조선과 일본이 같은 뿌리라는 ‘동조동근’을 상징하는 것이다.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1920년 어느 날, 일본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와다 산조는 신청사 중앙 홀의 천장과 맞닿는 벽에 설치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총독부의 의뢰를 받습니다. 이후 일본의 고고학자, 역사학자들까지 초빙해 몇 차례 화제(畫題) 선정회의를 하죠.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은 이들에게 “총독정치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주제를 찾으라”면서 특히 “일본과 조선이 같은 땅이라는 점을 강조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총독부 중앙 홀 북쪽 벽 벽화. 우리의 전래 설화인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해서 그렸다. 1996년 건물을 해체하면서 철거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다 2014년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에서 다시 공개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총독부 중앙 홀 북쪽 벽 벽화. 우리의 전래 설화인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해서 그렸다. 1996년 건물을 해체하면서 철거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다 2014년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에서 다시 공개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천지를 창조하는 단군과 스사노오(일본신화에 나오는 신), 서로 힘을 합쳐 바벨탑을 쌓는 조선인과 일본인, 꽃 피고 새 우는 극락에서 뛰노는 양 국민과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고심 끝에 낙점된 화제는 두 나라에 공통된 선녀승천 설화를 그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에 ‘선녀와 나무꾼’이 있다면 일본엔 나무꾼 대신 늙은 어부가 등장하는 ‘하고로모(羽衣)’ 설화가 있다는 데 착안한 거죠.

총독부 중앙 홀 남벽에 설치됐던 ‘하고로모’ 벽화. 자신의 옷을 늙은 어부에게 빼앗긴 선녀가 이를 되돌려 받고 천상의 춤을 추며 하늘로 날아올라 후지산 근처에서 사라졌다는 일본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총독부 중앙 홀 남벽에 설치됐던 ‘하고로모’ 벽화. 자신의 옷을 늙은 어부에게 빼앗긴 선녀가 이를 되돌려 받고 천상의 춤을 추며 하늘로 날아올라 후지산 근처에서 사라졌다는 일본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자들과 함께 여러 해 작업한 끝에 와다는 신청사 준공 직전인 1926년 9월 반원형 벽화 두 점을 완성합니다. 각각 가로 11.5m, 세로 4.3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었죠. ‘선녀와 나무꾼’은 총독부 청사 중앙 홀 북벽에, ‘하고로모’는 마주보는 남벽에 설치됐습니다. 이후 이 한 쌍의 벽화는 1996년 총독부 건물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70년 동안이나 이 자리에서 일제의 일관된 조선통치 이데올로기, 즉 양국은 뿌리가 같다는 동조동근(同祖同根), 나아가 내선(內鮮)융합,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동화주의는 무단통치의 대명사인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들고 나온 말이지만, 그 후 사이토를 총독으로 발탁한 일본 하라 내각도 거의 의미가 같은 내지연장주의를 신봉했습니다. 일본과 똑같은 제도를 조선에 들여와 안정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니 얼핏 평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갈수록 심해졌고, 동화주의는 단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데 악용될 뿐이었죠.

창간 이후 지속적으로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를 비판한 동아일보는 1922년 8월 16일자 사설 ‘조선인의 흉중’에서 한층 강도를 높였습니다. 먼저 일본의 정치가들을 향해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이성과 지혜가 우수하고, 무사도의 전통을 이어 정의롭다”고 추켜세운 뒤 “그런데도 ‘조선인을 성심성의로 대하고 조선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니 과연 우리의 흉중을 살핀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어 “동화주의니, 내지연장주의니 해서 우리의 장구한 4000년 역사와 우리만의 문화를 버리라 하는 건 모멸의 극치”라고 질타했습니다.

9월 16일자 ‘횡설수설’도 일선(日鮮)융화는 역사적으로 보아 도저히 불가능하고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의 대세가 됐다는 요지의 논문을 실은 일본 잡지를 인용한 뒤 이런 주장을 하는 꽤 많은 일본인들을 ‘불령(不逞) 일본인’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독립을 외치는 조선인을 ‘불령선인’이라 해 박해하는 일제를 정면으로 비난한 거죠. 총독부는 이 두 기사 모두 압수했습니다.

재임 5년 9개월 동안 조선민족의 육체와 정신을 착취한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그는 전임자들이 내세웠던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의 극단적 형태인 ‘내선일체’를 구호로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징병제 등을 강요했다.
재임 5년 9개월 동안 조선민족의 육체와 정신을 착취한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그는 전임자들이 내세웠던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의 극단적 형태인 ‘내선일체’를 구호로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징병제 등을 강요했다.


‘같은 뿌리’를 강조한 동화주의, 내지연장주의는 ‘조선의 히틀러’라 불린 7대 총독 미나미 지로의 ‘내선일체’로 연결됩니다. 조선과 일본이 융화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극단적으로 한 몸이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에 따라 조선 민중들은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했고, 우리말을 쓸 수도 없었으며,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이 격화하면서 ‘일본국민의 자격으로’ 군대에 지원하고, 끌려가야 했습니다. 이랬던 미나미가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라면서 조선과 일본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조선인’ 대신 ‘반도인’을 쓰라고 했다니 영문도 모르는 채 총독부 벽화에 쓰인 우리 나무꾼이 통곡할 일입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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