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서양적?… 이분법을 향한 분노를 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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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국립현대미술관서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에 설치된 양혜규의 작품 ‘침묵의 저장고; 클릭된 속심’(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에 설치된 양혜규의 작품 ‘침묵의 저장고; 클릭된 속심’(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로 다른 온도 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의 응결은 조용하고 신중한 소통의 모델이다.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한다면, 눈물과 땀이 흐르더라도 공존할 수 있다.”

국내 공공 미술관에서는 5년 만인 미술가 양혜규(49)의 개인전은 이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9일 개막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₂&H₂O’전 이야기다.

양혜규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전에 작품을 선보이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준비한 전시는 신작을 포함한 약 40점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을 만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대형 작품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을 마주한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라인드를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양혜규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재다. “누군가는 서양적, 다른 이는 동양적이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서구적인 오피스 공간을, 또 동양적인 대나무발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개념 사이의 틈과 경계를 작가는 겨냥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소리 나는 가물(家物)’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다리미,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냄비의 형태를 확대하고 왜곡해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든 조각들은 생물이란 무엇이고 무생물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동양적이고 어떤 것이 서양적인가를 되묻는다.

이들 작품과 함께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하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분법이나 규정을 향한 거부를 감지할 수 있다. 좌우 중 한쪽을 ‘선명하게’ 선택하라는 이분법, 혹은 ‘모난 정이 돌 맞는다’며 남들과 같아지기를 강요한 사회에 대한 세대적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시각 언어다. 블라인드와 도금된 방울, 인조 짚단처럼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조각 작품들은 깔끔한 마무리로 ‘예쁘게’ 보이는 데도 노력한다. 이런 유머러스한 비주얼이 관객들을 먼저 매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작 ‘오행비행’은 이번 전시의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O₂&H₂O’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현실의 추상화’를 시도했다고 설명한다. 현수막과 애드벌룬으로 만든 작품은 각각 오방색이 상징하는 다섯 가지 원소(물, 나무, 불, 흙, 철)를 시각화했다. 그 가운데 스피커 작품 ‘진정성 있는 복제’에선 인공지능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 지구’를 표방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지워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혹시 텅 빈 목소리가 아닐까? 무료. 내년 2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양혜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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