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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세계에 대한 감정을 당신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SF라는 통로로”

입력 2020-05-15 14:15업데이트 2020-05-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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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젊은 글쟁이를 만나다]
김초엽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0만 부 돌파
김초엽 씨는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다른 어느 것보다 큰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이름은 운명과 닿아 있다. 작가들을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른 길도 가봤지만 결국은 이름에 암시하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김초엽 씨(27)는 어떨까. 부모는 그 이름의 한자를 ‘풀 초(草), 잎 엽(葉)’로 정해 주었다. “식물학자라면 좋았으려나요(웃음).” 그는 식물학이 아닌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이름은 작가라는 직업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책은 식물로 이뤄지지 않았던가.

김초엽 씨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리가…’)이 최근 10만 부를 찍었다. 한국 SF소설이 거둔 최초의 성과다. 신인 작가가 낸 책이 출간 1년도 안돼 이뤄낸 성취이기도 하다. ‘우리가…’는 일본 하야카와 출판사와도 판권 계약을 맺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저작물 중 최고의 선인세일 것”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그만큼 일본 출판계의 호응도 뜨거웠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김 씨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단편을 보여줬다. “쿠키런 게임에 들어간 남자 이야기에요. 차마 책에 실을 수는 없었어요!(웃음)” 작법서를 읽은 뒤 처음으로 써본 소설이라고 했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공부한 그가 학부 졸업을 앞뒀을 즈음이었다. 습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이기도 했다.

김 씨가 언급한 ‘책’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렸다. 완벽한 유전자로 인간을 만들어냈기에 차별도 장애도 없는 유토피아 마을이 만들어진 미래(‘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다섯 개의 행성이 뜨는 행성에서 외계 지성체를 만나게 되는 생화학자(‘스펙트럼’), 사후 인간의 ‘마인드’가 업로드되는 도서관(‘관내분실’)…. 이 SF소설들은 “동시대 현실에서는 아직 가능하지 않은 미래의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 여기의 사회문제들을 예리하게 가로지르는”(평론가 인아영)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는 자신의 책이 이렇게 많이 읽힐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고백하지만, 김초엽 씨의 작품을 일찍이 주목한 것은 일반 독자들이었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관내분실’은 소설집에 실리기 1년 여 전부터 홍보용 별쇄본으로 제작돼 서점가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관내분실’이 실린 소설집 ‘우리가…’가 출간된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 때는 김초엽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길게 늘어선 상황이었다. “단편을 꾸준히 발표했지만 책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어요. 다수에게 읽힐 만한 내용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고요. (많은 독자에게 읽히려면) 청소년문학 공모전에 도전해 볼까, 웹소설을 써볼까 하던 중이었어요. SF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요.” 도서전 사인회 때 독자가 30명쯤 오지 않을까 했던 김초엽 씨는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은 지난해 주요 일간지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의 ‘2019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과학도인 김 씨가 SF소설가가 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그러나 “소설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만들어봤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일찍이 소설가의 꿈을 접은 터였다. 대학에 진학해 교지의 기사, 논픽션, 과학칼럼 같은 글을 쓰면서 과학행정가나 과학저널리스트 같은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대학 졸업 직전 우연히 읽은 해외 작법서의 저자는 “소설은 재능이 아니라 공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물 내면을 탐독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는 여느 작법서와는 달랐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내면 묘사라기보다는 플롯과 구조이며, 이 서사를 견고하게 쌓을 줄 알아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안내였다. “가령 3막 구조로 짜인 소설이라면 1막에선 먼저 주인공을 소개하고 2차례에 걸쳐 위험이 암시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본격적인 위기에 진입한다는 것이었지요.” 많은 작가들이 문장 수업으로 반복하는 필사를 해본 건 딱 한 번, 김애란 씨의 단편 ‘달려라, 아비’가 너무 좋아서 따라 써본 게 전부다. 김 씨는 편하게 글을 쓰고 의견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습작 모임을 만들었고, ‘공부를 하듯이’ 소설들을 썼다.

김초엽 과학문학상 수상작 ‘관내분실’
‘관내분실’은 대학원 실험실에서 쓰인 소설이다. 해외에 주문한 실험 재료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에 그는 그 ‘멍 때려야 하는 시간에’ 작품을 썼다. 중반부 들어서서 좀처럼 글이 풀리지 않아 고심하던 그는 일단 ‘관내분실’을 접고 다른 글을 써보기로 했다. 우주로 떠나보낸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분투하는 할머니 과학자의 얘기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는 이 소설이 생각보다 술술 써져서, 그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관내분실’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 편 다 보내면 하나라도 가작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김 씨는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에 ‘관내분실’과 ‘우리가…’를 보냈고, 대상(‘관내분실’)과 가작(‘우리가…’)을 함께 거머쥐었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출간 간담회 때 질문에 답하는 김초엽 씨. 동아시아 제공
김초엽 씨가 조명받게 된 시점은 흥미롭게도 국내에서 SF 장르가 크게 부각된 시기와 겹쳐진다. 한국에서 SF는 장르물 가운데서도 유달리 독자가 한정적이었다. 과학기술은 전문적이어서 대중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감성이 두드러지는 한국소설의 풍토에서 과학이라는 소재는 이질적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것이 SF 1세대 작가로 꼽히는 김보영 씨의 소설이 지난해 미국의 대형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SF가 취약했던 영화 분야에서도 SF물 ‘사냥의 시간’이 최근 개봉한 데 이어 ‘승리호’, ‘서복’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SF에 주목하게 된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김초엽 씨는 “독자들의 수요에 따른 콘텐츠의 변화”라고 짚었다. “젊은 독자들이 내면화한 이야기보다는 서사 자체의 동력을 갖고 움직이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이런 독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재미난 이야기가 한국문화 콘텐츠에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SF하면 그간 서양에서 유입된 백인 중심 서사가 떠올랐는데, 최근 한국의 SF는 국내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친근감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요인인 듯 싶다”고 김 씨는 밝혔다.

스스로 “기억, 감정, 마음 등 비물질적이라 여겨지는 개념을 물질적인 개념으로 변환해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장르의 장르’에서)고 소개하는 작가다. 과학소설(SF)은 “단순히 과학적인 소재가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 주제를 풀어나가는 소설”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독자가 읽을 때는 감정이 먼저 움직여지기를 바라는 마음, 생각은 책을 덮은 다음에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감정을 건드리고자 하기에 김 씨의 SF소설은 기존 소설 독자들까지 끌어당긴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명징하고 광대하게 이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이 시선에서만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고 김초엽 씨의 작품을 평했다.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세계에 대해 갖게 되는 질문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작가의 답변과도 맞닿는 얘기다. 김 씨는 최근 발표한 ‘인지공간’(‘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작품은 외형적인 성장이 이뤄지지 못해, 인간의 공동의 지식과 기억을 저장하는 ‘인지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브의 이야기다. 개별적인 다른 인지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이브의 시도는 실패하지만, 이브의 노력에 감화된 인지공간의 관리자 제나는 인지공간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소외나 결핍으로 여겼던 것들이 실은 변화와 성장의 단초가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마다 힘든 상처가 있을 수 있는데 그분들이 제 글을 읽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초엽 씨의 글쓰기 노하우

①자신이 잘 쓸 수 있는 것을 찾으라=“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계에서 서바이벌하려면 ‘나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 자기와 잘 맞는 것을 찾게 될 겁니다.”

②남들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특히 부정적인 피드백에요. 초등학생 때 ‘너는 재능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주변 평가에 소설을 포기했었지만, 10년 여 뒤 작법서에서 ‘소설은 재능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방법을 배우면 당신도 쓸 수 있다’는 내용에 용기를 얻어 소설을 쓰게 됐어요. 사실 자신이 뭘 잘 못하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좋지 않은 반응에 너무 크게 매이지 말고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③개연성에 맞춰 쓰라=“저는 도입부, 중요 콘셉트, 결말부를 먼저 생각해 놓는데,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가장 개연성이 있을까’를 많이 고민합니다. 제가 그리고 싶은 장면을 중심으로 쓰면 작가 입장에선 감동적이어도 독자 입장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요. 개연성에 초점을 맞춰서 쓰려고 합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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