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3無 3親’ 15가지 찬과 밥… 봄 향기 머금은 ‘잔칫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돼지숯불구이, 고등어구이, 양념게장 등 13가지 반찬이 나오는 해누리정식. 임선영 씨 제공
돼지숯불구이, 고등어구이, 양념게장 등 13가지 반찬이 나오는 해누리정식.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좋은 한식집 조리장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상차림에서 반찬의 가짓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밥상에 올린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반찬을 만들 때부터 상차림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반찬 하나하나의 재료와 양념을 배합하는 완성도를 먼저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상을 낼 때는 머릿속에 상차림을 미리 그린다. 반찬끼리 서로 중복되거나 충돌하지는 않는지, 밥과 국의 온도는 적절한지, 고기와 해산물은 비린내가 없는지, 첫술과 마지막 한술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국이 얼큰할 때 반찬은 개운해야 하고, 국이 담백할 때 반찬은 칼칼하거나 짭조름해야 한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고기 생선 야채 하나하나마다 손이 갈 수 있을 때, 든든하게 먹었지만 몸은 가뿐할 때 잘 차린 밥상이라고 했다.

자연요리 제철 밥상 ‘해누리’가 그 정석을 보여준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승용차로 35분 걸린다. 1만5000원인 해누리정식은 13가지 반찬에 강황솥밥과 된장찌개로 구성한다. 손님이 주문하면 1인용 압력솥에 강황밥을 앉힌다. 밑은 노릇하게 그을려 숭늉으로 만들면 제대로 구수했다. 누룽지를 좋아하는 지인은 바닥을 벅벅 긁어 누룽지 자체의 바삭함을 즐겼다.

밥상 중앙에는 불향이 스민 돼지숯불구이, 고소한 고등어구이가 놓였다. 좌측의 양념게장, 우측의 풀치조림이 입맛을 돋운다. 잡채와 버섯탕수는 잔칫집에 초대받은 기분을 준다. 야채는 뿌리와 열매, 잎채소가 골고루 있는데 유자청과 흑임자 소스를 얹은 마샐러드, 파와 함께 껍질째 무쳐낸 더덕이 땅의 싱그러운 기운을 주었다. 가지조림의 채즙이 입을 적시고 냉이와 곰취나물 봄 향기가 마음을 적셨다.

장과 김치는 시간을 두고 직접 담그고 발효시킨다. 된장찌개는 구수함을, 겉절이는 상큼함을 강조했다. 찰토마토와 양배추샐러드는 입을 청량하게 씻어주었다. 무엇보다 신선한 재료를 쓴다는 것이 향에서 느껴졌다. 숯불고기에 올린 대파는 연초록 진액이 풍부했고 봄나물은 시골 앞산을 옮겨온 듯 향이 진했다. 원재료가 좋기에 화학조미료가 필요 없고 단맛 짠맛 매운맛 새콤한 맛이 즐거운 변주를 이뤘다.

음식은 3무(無) 3친(親)을 추구한다. 3무란 화학조미료, 잔반 재사용, 허위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는다는 자세. 3친이란 사람 자연 건강 친화한 요리를 한다는 의미다. 테이블 사이 간격도 널찍해 3월 햇살이 여유롭게 스며든다. 반찬이 부족하면 넉넉히 떠다 먹을 수 있도록 한쪽에 ‘셀프 바’를 마련했다. 특히 보온 밥솥에 넣어 온도를 유지해 맛있게 한 잡채와 남은 반찬은 포장을 권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남김없이, 모자람도 없이 든든한 한 끼였다. 넉넉하고 따스한 현모양처의 밥상처럼.

○ 해누리=경기 광주시 초월읍 경충대로 1305-11, 해누리정식 1만5000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한식#해누리#3무 3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