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조리 꼬집는 모차르트… 절절한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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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2중창을 부르고 있는 수산나(손지혜·오른쪽)와 백작부인(홍주영). 서울 예술의전당 제공
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2중창을 부르고 있는 수산나(손지혜·오른쪽)와 백작부인(홍주영). 서울 예술의전당 제공

“나리! 왜 놀라십니까? 칼을 빼들고 이 비천한 몸종을 죽이려고 그러십니까?”

18세기 후반 절대왕정 시대의 유럽에서 여성 차별은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더구나 하녀의 신분은 그야말로 귀족의 도구와 다름없는 ‘최하층민’이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막, 하녀 수산나는 최상위층 권력자 백작에게 과감히 대들며 오히려 농락한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말한 대로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에 해당하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소프라노 손지혜는 당차게 수산나를 연기했다. 백작을 혼쭐내는 수산나 앞에서 청중은 1786년 초연할 때 이 장면을 목도했던 일반 백성들처럼 쾌재를 불렀을 터. ‘갑질’하는 백작에게 절묘한 기지를 발휘하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이뤄가는 ‘을’의 역공을 온몸으로 노래했다.

모차르트는 이제 더 이상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았던 희화화된 인물이 아니어야 한다. 키 150cm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는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미 부조리한 사회에 대항해 스스로 혁명을 일군 풍운아였다. 후배 베토벤에게 자유음악가의 길을 터준 ‘궁정사회의 시민음악가 1호’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실의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의도적으로 모차르트를 밝게, 밝게 들려줬던 ‘카라얀식’ 연주는 지양돼야 한다. 샤오치아 뤼가 지휘한 서울시향은 시종일관 간결하고 빠른 템포로 강력한 모차르트를 지향했다. 오페라 사상 최초로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동반하는 레치타티보(대사 부분)가 3막에서 나올 때 가사와 음악은 동일체로 움직였다.

‘피가로의 결혼’은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다. 당연히 아리아의 정점은 백작부인과 수산나가 담당한다. 이 점에서 연출자 스티븐 카르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뛰어난 가창력이 돋보인 소프라노 홍주영이 부른 백작부인의 ‘아름다운 시절은 어디에’와, 마지막 아리아를 책임진 수산나의 ‘어서 오세요, 내 사랑’에서 보여준 조명효과는 탁월했다. 모차르트는 한술 더 떠 죽기 직전 완성한 ‘마술피리’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모차르트는 제대로 연주됐어야 한다. 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청중은 모차르트의 눈물까지도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모차르트를 모차르트답게 연주하는 이러한 공연이 우리 음악계에 자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르농쿠르가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사에서 말한 ‘신의 손에 들린 펜대’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클라라하우스 대표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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