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소치 달군 아르메니아 선율… ‘칼춤’ 같은 하차투랸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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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러시아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개막식에서는 차이콥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풍요한 음악문화와 발레를 기반으로 한 아이스댄싱이 유감없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한껏 리드미컬한 선율 하나가 귀를 붙들었습니다. 아람 하차투랸(1903∼1978·사진)의 발레 ‘가야네’에 나오는 ‘칼춤’이었습니다. “음? 이상한데?”

무엇이 이상했느냐 하면, 하차투랸은 러시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옛 소련 시대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3대 작곡가로 불렸습니다. 54세에 소련 작곡가 동맹 총비서가 되었고, 사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인이었던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와 달리 캅카스 지방의 아르메니아 사람이었습니다.

옆 나라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아르메니아인 지역에서 자라난 그는 열여덟 살 때 모스크바로 가서 러시아 음악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은 거의 모두 아르메니아의 민속 선율과 리듬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발레 ‘가야네’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발레 ‘스파르타쿠스’, 바이올린협주곡 등 그의 대표곡 모두 러시아 음악과 분명히 다른 캅카스의 색채가 느껴집니다.

그의 생애가 러시아인 ‘동무’들과 부침을 함께하기는 했습니다. 1948년 소련 공산당이 그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를 싸잡아 ‘형식주의 작곡가’로 비판했고, 이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은 1953년 스탈린이 죽고 난 뒤에야 풀렸습니다. 이 사실도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두 러시아 작곡가는 분명 당국의 요구에 앞서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다 제재를 받은 면이 있지만, 하차투랸은 늘 ‘인민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관계가 소원합니다. 끊임없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시도를 펼치고 있죠.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던 하차투랸의 ‘칼춤’을 들으며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노동자 농민의 나라’를 표방한 소련의 대표 작곡가였던 하차투랸은 40년 전 노동절인 1978년 5월 1일 세상을 떠났고,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레반 근교에 묻혔습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하차투랸#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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