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칼 선생님’이 인권교육 알리미 됐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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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업’ 펴낸 이은진 교사

“교실만은 늘 평등하고 민주적이길 바란다”는 서울 강서구 발산초등학교 교사 이은진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교실만은 늘 평등하고 민주적이길 바란다”는 서울 강서구 발산초등학교 교사 이은진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인권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에게 맞는 교육 모델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었죠.”

최근 ‘인권수업’(지식프레임)이란 책을 펴낸 서울 강서구 발산초등학교 교사 이은진 씨(37)는 초보 교사 시절 ‘왕칼(왕카리스마) 선생님’이라 불렸다. 잘못은 엄하게 다스리고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아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5년쯤 지나자 상벌에 기초한 이런 통제 방식에 강한 회의가 들었다. 야단을 치는 강도가 갈수록 강해진 데다 아이들도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씨는 “처음에 따뜻하고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했더니 교실이 엉망이 됐다”며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니 ‘3월에는 웃지 마라’ ‘깐깐하게 굴어라’고 했다. 이후 교실은 조용해졌지만 아이들이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교사와 학생의 수평적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의 자기결정권에 상처를 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학생들의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계기다. 하지만 막상 인권 교육을 하려니 자료가 부족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시민 강좌를 참고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 모델을 만들었다.

“왕칼 시절 ‘왜요?’ ‘안 돼요?’는 저희 반 금지어였어요. 학생은 어른(선생님)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작은 일도 함께 풀어가려 합니다. 예컨대 말투가 거친 아이에게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이 무안해. 표현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라고 동의를 구하는 식이죠. 4학년 사회시간 ‘일하는 사람들’ 단원에서는 ‘노동’(블루칼라)과 ‘근로’(화이트칼라)라는 단어에 담긴 편견을 들여다보는 등 교과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인권을 다룹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실의 위계질서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살피는 일이다. 교실에도 힘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 속에서 존재감이 약한 아이들은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하지 마’라고 하면 편하지만 금지는 근본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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