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문에는 글쓴이의 ‘욕망’이 담겨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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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니체 외 29인 지음/장정일 엮음/368쪽·1만6000원·열림원

1500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인 에라스뮈스가 쓴 ‘격언집’ 서문. 열림원 제공
1500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인 에라스뮈스가 쓴 ‘격언집’ 서문. 열림원 제공
책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읽을 수도, 눈길 가는 부분만 볼 수도, 거꾸로 뒤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장정일 작가는 책읽기의 시작은 ‘서문’이라고 강조한다.

“수영장에서 아무 준비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처럼 서문을 생략하고 본문을 읽는 것은 준비와 목표 없이 떠나는 여행과 같다.”

이처럼 저자가 서문을 중시하는 이유는 서문이 양은 본문보다 적지만 글쓴이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을 “책을 해설해주는 최고의 참고서”라고 평가하는 저자가 고전 명서 중 30권의 서문을 추려 정리한 책이다.

서문에도 유행이 있다.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짤막한 헌사가 주류를 차지했다. 군사학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4세기 로마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쓴 ‘군사학 논고’의 서문은 “황제의 후원 없이는 저서를 올바르게 출간할 수 없습니다”라고 시작한다. 학문이나 예술이 왕과 귀족의 감독과 보호 아래 육성된 역사와 관련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반면 1918년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로르카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의 서문은 “이 책의 영혼은 이제 곧 독자들의 눈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독자를 중시하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출판이 자유로워지면서 서문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1857년 현대 시의 원천으로 불리는 ‘악의 꽃들’을 썼다. 그는 서문에서 “우둔함과 과오, 죄악과 인색이 우리 마음속에 친근한 뉘우침을 기른다”라는 한 편의 시를 담았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서문에서 “저자는 걸리버의 친구”라며 풍자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다윈의 ‘종의 기원’,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등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 중 하나다.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위대한 서문#니체#장정일#책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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