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균 “선입견 떼고… 오롯이 그림만 봐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슬럼프 딛고 돌아온 오치균 화백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서 만난 오치균 화백이 자신의 뉴욕 센트럴파크 그림(2017년 작)을 소개하고 있다. 오른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손이 매끄러웠다. 그는 “로션을 잘 발라 그런가 보다”라면서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서 만난 오치균 화백이 자신의 뉴욕 센트럴파크 그림(2017년 작)을 소개하고 있다. 오른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손이 매끄러웠다. 그는 “로션을 잘 발라 그런가 보다”라면서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오치균 화백(61)을 만나기 며칠 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오치균 작품이 한창 때인 10년 전보다 가격이 꽤 떨어졌어요.”

그럴만했다. 한국의 슈퍼 인기 화가로 불려온 그의 그림은 구상화다. 고향인 충남 시골의 감나무,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미국 뉴욕과 강원 탄광촌의 풍경을 그린다. 그것도 유화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혼합한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서. 그러니 느낌이 ‘세다’. 몇 년간 인기였던 ‘구도(求道)의’ 단색화와는 대척점에 있으니 컬렉터들의 ‘러브콜’이 줄어든 거다.

그러던 중 ‘로드 무비―오치균’이라는 전시 도록이 배달돼 왔다. 때맞춰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전화도 왔다. “오 화백이 9월 말까지 저희 화랑에서 ‘비매(非賣)’ 전시를 합니다. 최재원 독립 큐레이터가 작품 여정을 따라 큐레이팅했어요.”

오치균, 상업화랑, 큐레이팅…. 흥미로운 조합이라 생각하며 도록을 넘겨봤다. 2005년 겨울 사북 그림 뒤로 2011년 감나무, 2005년 미 오하이오주 샌타페이 그림이 이어진다. 연대기적, 공간적 구성이 아니다. “내일 오 화백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노화랑에서 작가를 만났다. 정면에 걸린 120호 그림은 그가 올해 그린 뉴욕 센트럴파크였다. 초록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밝은 느낌으로 짐작건대, 그는 몇 년간 슬럼프로 생긴 공황장애에서 벗어난 듯했다.

“제 그림은 뜨겁잖아요. 차갑고 이지적인 단색화 인기와 함께 손님이 뚝 끊겼어요. 한데 그게 전화위복이었죠. 제 그림 여정을 돌아보게 됐으니까요. 최근엔 질감을 더욱 강조하다보니 추상 느낌이 강해지네요.”

그의 첫인상은 탄탄한 몸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 세련, 그 자체였다. “정말 실례지만…”이라고 양해를 구한 뒤 브랜드를 물어봤다. 터키석과 송곳니 장식의 벨트는 발렌티노, 옆면에 줄무늬가 있는 바지는 돌체앤가바나, 발망 셔츠, 릭오웬스 부츠…. 자기만의 색깔이 ‘센’ 명품 브랜드들이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개인 트레이닝을 받고요. 몸 관리가 자기 관리니까요.”

처음부터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10남매 중 일곱째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미술학원을 3년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가기 직전 사기를 당해 뉴욕에서 힘겹게 살았다. 마침내 1990년대 국내 전시에서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다 2006∼2007년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경매에서 100호 그림이 6억 원대에 팔렸다. 그때부터 ‘블루칩 작가’ ‘상업 작가’란 호칭이 붙었다.

하지만 상업 작가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제 그림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비싸게 사는 거 아닙니까? 명품 옷 사는 것과 같은 심리겠죠. 그런데 한국 미술계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무 자르듯 나눕니다. 다들 저를 ‘감나무 화가’ ‘경매 몇 억 원 화가’라고만 하지, 제 그림을 진지하게 봐주지 않았어요.”

전시 순서의 의미는 이랬다. “사북 가로등 불빛이 감나무와 샌타페이 사막의 붉은 색감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작가의 ‘뉴욕 시대’ ‘감나무 시대’ 등 수사(修辭)에 갇히지 말고 오롯이 그의 그림만 봤으면 합니다.”(최 큐레이터)

일요일 저녁 늦게 오 화백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 돈을 벌어 왔다. “왜 예술가는 항상 남으로부터 받기만 해야 하나요?” 그는 모교인 서울대 미대에 10년째 ‘오치균 장학금’을 주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치균#상업 작가#오치균 비매 전시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