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빛과 어둠의 色 ‘블랙’, 그 모호한 매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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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 지음·윤영삼 옮김/580쪽·1만8000원·위즈덤하우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1599년 완성한 유채화 ‘나르키소스’. 검은색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소년을 그렸다. 카라바조는 거울도 새까만 색으로 묘사해 ‘봉쇄된 자아’의 어렴풋한 환영을 표현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1599년 완성한 유채화 ‘나르키소스’. 검은색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소년을 그렸다. 카라바조는 거울도 새까만 색으로 묘사해 ‘봉쇄된 자아’의 어렴풋한 환영을 표현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검은색은 어떤 물질로 가득 찬 상태일까 아니면 텅 빈 공간일까? 검은색이 어떤 하나의 ‘색’이긴 한 걸까? 그게 아니면 그저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일 뿐인 것일까? 검은색이 가진 모호한 특성은 여러 상반되는 의미들을 부여받게 만들었다.”

검은색은 얼핏 확고하다 여겨지는 모호함을 보여준다. 응시하는 이의 시선을 천천히, 결국 송두리째 삼켜 버리고 마는 심연처럼 매혹적인 모호함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매뉴얼칼리지 문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스스로 서문에 고백했듯 “다소 난잡해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검은색에 대해 끌어 모은 온갖 이야기를 엮어 냈다.

역사, 종교, 미술, 패션, 건축 영역을 식탐하듯 넘나드는 문장 흐름이 종종 장황하고 뻑뻑해진다. 하지만 검은색의 마력에 매혹돼 필생의 연구 대상으로 붙들고 파고든 초로의 학자가 자기 흥에 겨워하며 쉼 없이 이어 가는 강의를 상상해 보면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색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표현하기 쉬워 보이는 검은색도 마찬가지다. 검은색을 설명하며 ‘그을음 같다’ 또는 ‘먹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내 검은색 가방은 전혀 그을음이나 먹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묘사’를 포기하고 ‘검다’라는 단어를 사용해 ‘지칭할’ 뿐이다. 그 밖의 방법은 비교나 은유의 동원이다.”

검은색은 비옥한 토양을 상징하는 한편 생명이 불에 타고 소멸한 뒤 남겨진 재의 이미지도 갖는다.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말끔한 옷 색깔인 동시에 죽음의 예식에 갖춰야 하는 의상 색깔이기도 하다. 한밤의 성적 자극을 암시하는 반대편에서 우울, 회한, 오열을 뭉뚱그려 함축한다. 지은이는 “그 어떤 색도 이처럼 정반대의 확고한 극단을 동시에 상징하지 못한다”고 썼다.

검은색의 위태로운 매혹을 작품에 녹여 낸 대표적인 두 화가 카라바조와 렘브란트를 당연히 비중 있게 다뤘다. 다른 미술 관련 서적에 비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치밀하게 기술된 것은 아니지만,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와 렘브란트의 ‘예레미아스 데 데케르’를 나란히 맞대 놓은 해당 장(章) 마지막 부분은 특히 한참을 멈춰 살폈다. 검은색이 빛과 어둠을 모두 표현하거나 의미할 수 있음을 또렷이 확인시킨다.

나르키소스가 넋 놓고 바라보는, 이제 곧 그 안으로 뛰어들 심연은 화가가 바라본 삶에 대한 시선의 방향을 드러낸다. 반면 렘브란트의 검은색은 그림 복판 피사체 얼굴에 비친 빛을 둘러싸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점잖은 작품 이야기에만 내용이 맴돌진 않는다. 인간이 가장 처절하게 ‘검정’을 맛보며 마주할 때에 대한 서술은 이렇다.

“흑담즙은 빨간 피, 흰 가래, 노란 담즙과 함께 인체의 네 가지 체액 중 하나다. 식도를 타고 몇 방울만 역류해도 목이 타는 듯 아프다. 구토에 섞여 나온 담즙은 어두운 색깔을 띠지만, 검은색은 아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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