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구의 反유대주의는 지적 열등감에서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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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을 멈추고/사사키 아타루 지음·김소운 옮김/292쪽·1만7800원·여문책

언제부턴가 철학책을 읽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자문하곤 했다. 정답부터 그리는 데 익숙한 업무의 조급함 때문일까. 그런데 이 책은 철학 전공 학자가 썼음에도 뭔가 달랐다. 장대한 철학 이론을 쾌도난마식으로 풀어 주는 ‘맛’이 있다. 강연록과 대담, 기고문을 엮은 책답게 호흡이 짧은 게 오히려 간명한 문체를 가능케 한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비교적 부피가 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대학의 역사까지 온갖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에서 대학의 역사를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대학과 인문학이 본연적으로 적대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인문학 중흥의 사명이 강조되는 요즘 대학 분위기를 감안하면 다소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탄생부터 교권(敎權)과 유착돼 보수화된 중세 대학에서 진정한 학문의 자유와 발전은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저자의 시각은 일리가 있다.

서구에서 학문 발전이 역사적으로 동양보다 결코 앞서지 못했으며, 고대 그리스를 전승한 12세기 이슬람 학문에 빚지고 있다는 견해도 흥미롭다. 이와 관련해 나치로 대표되는 서구의 반(反)유대주의가 사실은 이슬람과 유대인들에 대한 지적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한 역사왜곡이자 증오였음을 갈파하고 있다. 고대 한반도로부터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이 도리어 임나일본부설로 고대사를 왜곡한 장면과 겹치는 지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소설 ‘1Q84’는 결국 옴진리교의 행위와 같은 메시지만 남겼을 뿐이라는 혹평도 눈길을 끈다. 사교(邪敎)에 맞서겠다는 하루키의 공언과 달리 소설 속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의 성향은 죽음을 지향하고 심지어 예찬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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