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오장동 회냉면… 매워도 다시 한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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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향을 맡고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온다든가 혹은 헤어진 애인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랐다는 등의 내용을 다룬 이야기는 많습니다.

좀 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 누구의 책 제목처럼 ‘추억의 절반은 맛’이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플 때는 어머니와 관련된 음식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주인공이 가리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를 베어 물면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이 죽은 후, 사물이 없어진 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냄새와 맛만은 홀로 과거로부터 살아남아 아주 미미하지만 그런 만큼 더 뿌리 깊게, 형태는 없지만 집요하게, 충실하게, 오래오래 변함없이 넋처럼 남아 있어 추억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서 환기시킨다.”

어린 시절에 먹던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고 또 치매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뇌의 해마조직에 남아 끝까지 생존하나 봅니다. 그러나 끝까지 과거의 그 맛을 찾지 못할 경우 고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늙고 기력이 쇠한 뒤에 잃어버린 맛을 찾아서 여기저기 방황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 직접 만들어준 음식들이 터무니없이 짜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시니 혹 간이 맞지 않을까 봐 소금이나 간장을 계속 넣으신 겁니다. 특별한 날이면 자식들을 불러 만들어주신 경상도식 추어탕을 불효자는 짜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오장동 흥남집의 회냉면. 석창인 씨 제공
오장동 흥남집의 회냉면. 석창인 씨 제공
그런 어머니와의 마지막 외식은 평소 그렇게 좋아했던 오장동의 회냉면이었습니다. 평소 이 냉면 때문에 멀리 수원에서 올라온다며 매번 말을 건넸던 주인 할머니와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셨고요. 한편으로 병이 깊어 그 매운 회냉면을 어찌 드실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맛있다며 다 비우셨습니다.

저는 요즘도 어머니가 그리우면 오장동의 흥남집을 찾아 회냉면을 주문합니다. 음식이 나오면 저만의 규칙대로 가위로 면을 절대 자르지 않고, 설탕 한 스푼을 뿌린 뒤에 육수를 아주 조금 더 넣고는 경건하게 냉면을 비빕니다. 어머니를 기억 저편에서 불러내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지요.

새콤하고 매운 회냉면이 입안을 자극하면 눈물이 살짝 앞을 가리는데 이게 매워서인지,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는 굳이 감별할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 흥남집 서울 중구 마른내로 114, 02-2266-0735, 회냉면 1만 원·수육 2만 원

○ 오장동함흥냉면 서울 중구 마른내로 108, 02-2267-9500, 회냉면 1만 원·수육 2만 원

○ 명동함흥면옥 서울 중구 명동10길 35-19, 02-776-8430, 회냉면 9000원·홍어회 소 2만 원
#음식#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회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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