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근대의 경계에서 공동체 지평 넓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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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박경리문학상에 응구기 와 시옹오]김우창 심사위원장 심사평

제6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올 1월 이후 수차례 회의를 거쳐 6명의 최종 후보자를 선택했다. 후보 선정은 우선적으로 문학적 업적에 근거했지만 작가의 국적, 성별, 연령의 폭을 될 수 있는 대로 넓게 하여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작가 활동 기간은 15년 이상으로 정했다. 최종 후보자는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영국), 루이즈 어드리크(미국), 이사벨 아옌데(칠레),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레슬리 마몬 실코(미국), 하진(미국)이었다.

올해 후보로 선정된 작가들 가운데 유목민적 작가 또는 경계를 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탈경계(脫境界) 작가들이 여럿 있다. 지난해 후보자들도 많은 경계선을 넘어서 이동한 유목민적 삶을 산 작가들이었지만 대체로 서방 문화권의 테두리 안에서 이동한 이들이었다. 올해 후보 작가들이 넘은 것은 그보다 더 넓은 경계인 서방과 비서방, 인종적·문명적 경계였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역사의 한 단계를 나타내는 징후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수상자로 선정된 응구기 와 시옹오는 가장 두드러진 탈경계 또는 복합 경계의 작가라고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위치하는 자리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독립투쟁, 서양과 비서양, 근대와 전근대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는 케냐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교육받았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것은 반드시 그의 결정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케냐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의 글을 반정부적인 것으로 본 케냐 정부에 의해 투옥되는 어려움을 겪고 결국 미국에 정착했다. 그의 삶의 이동 경로는 경계와 경계 너머의 삶의 조건을 의식화하는 진로가 됐을 것이다.

이번 심사에서 논의 대상이 됐던 소설 ‘한 톨의 밀알’과 ‘피의 꽃잎들’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주로 영국 식민지가 된 케냐의 독립투쟁 그리고 광복 후의 사회 문제를 다룬다. 응구기의 작품들은 케냐의 독립투쟁과 여러 정치집단의 갈등에 초점을 두면서도 집단의 관점이 아니라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령 ‘한 톨의 밀알’은 독립투쟁을 주제로 하지만 공과 사, 행동과 양심 등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게 된다.

10년 후에 출간된 ‘피의 꽃잎들’에서 응구기는 케냐의 참모습을 빈곤의 무력한 농업사회가 아니라, 자족적인 번영을 누렸던 농업공동체에서 찾고자 한다. 그들의 선조는 숲을 베어내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풍요로운 농업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공동체적 단합에 기초한 것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고, 수확을 공동체의 축제로 축하해 춤추고, 함께 그들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다. 현대에 와서도 응구기는 이러한 사회를 이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러 경계가 착잡하게 교차되는 위치에서, 경계를 넘어 문제의 복합적 지평을 널리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응구기를 2016년도 제6회 박경리문학상의 수상자로 추천한 것은 적절한 결정일 것이다.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명단 (가나다순) ::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 김승옥 고려대 명예교수, 이남호 고려대 교수, 이세기 소설가, 최현무 서강대 교수
#박경리문학상#케냐#작가#응구기 와 시옹오#감옥#김우창#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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