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예술이고 생계인가 난 그 경계를 더듬는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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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 유목연 작가 개인전

수풀이 무성한 전시실에서 만난 유목연 작가는 “한동안 작품공모전에 너무 자주 떨어져서 여러 가명을 지어 응모하다가 운 좋게 당선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수풀이 무성한 전시실에서 만난 유목연 작가는 “한동안 작품공모전에 너무 자주 떨어져서 여러 가명을 지어 응모하다가 운 좋게 당선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그에겐 집이 없다.

10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제6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작가 개인전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을 여는 유목연 작가(38). 작품공모전 지원서를 쓸 때 거주지 기입란에 마포구의 한 찜질방 주소를 적은 지 올해로 6년째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엔 주차장설비 수입업체에 취직해 월급쟁이로 살았다. 그러다 2007년에 카드빚 수천만 원을 진 걸 아신 부모님이 집에서 나를 쫓아내셨다. 찜질방과 작가 레지던시(공동작업실 겸 숙소)를 전전하며 8개월쯤 견디다 집에 찾아갔더니 열쇠를 바꿔놓으셨더라. 지금껏 가족과 교류가 없다. 동생 결혼식에도 못 갔다.”

식기와 조리도구를 구해 묶은 ‘목연포차’의 배낭 형태. 리어카형도 있다. 두산갤러리 제공
식기와 조리도구를 구해 묶은 ‘목연포차’의 배낭 형태. 리어카형도 있다. 두산갤러리 제공
어떻게 먹고살까 고민하다가 2010년부터 이동식 포장마차 작업을 시작했다. 냄비 주전자 보온병 등을 주워 엮어 미니포장마차 세트를 만들고 ‘목연포차’라 이름 지었다. 그걸 지게처럼 지고 다니며 여러 기획전시 한구석에서 커피나 국수를 팔았다. 작품인지 장사인지 스스로도 규정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흥미로워했다.

“특이한 행동으로 관심 끌려는 속셈 아니냐고? 내겐 그렇게 치밀한 깜냥이 없다. 그냥 ‘뭐라도 해야지’ 생각 끝에 떠올린 건데 계속하다 보니 남들이 예술 작업으로 여겨줬다. 어떤 이는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의 미술관에서 음식 나눠주기 퍼포먼스를 뒤늦게 따라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지만 믿지 않더라.”

주소지인 찜질방 직원의 소개로 마사지 기술을 배운 뒤에는 전시실에서 10분에 1000원을 받고 관람객을 안마해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역시 퍼포먼스인지 장사인지 모호했지만 관심을 끌었다. 한 단골 관람객은 어느 날 온 가족을 데리고 찾아왔다. 출장서비스 요청까지 들어왔다.

“내 작업을 예술활동이라 생각하느냐고? 글쎄. 뭐가 예술이고 뭐가 예술이 아닐까. 나는 내 삶 언저리에서 그 경계를 더듬는 중이다. 사회적 메시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위안 삼고자 만든 것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의미가 부여된다.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아온 듯하다.”

경기 안산에서 처음 선보인 ‘나뭇가지 세우기’ 퍼포먼스. 해외 여러 도시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뭇가지 넣은 통을 터키 공항에서 폭탄으로 오해받아 곤욕을 치렀다. 두산갤러리 제공
경기 안산에서 처음 선보인 ‘나뭇가지 세우기’ 퍼포먼스. 해외 여러 도시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뭇가지 넣은 통을 터키 공항에서 폭탄으로 오해받아 곤욕을 치렀다. 두산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경기 안산에서 2주간의 퍼포먼스로 시작한 ‘나뭇가지 세우기’ 작업을 선보인다. 포르투갈 리스본, 프랑스 파리, 태국 방콕 등 8개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에 서서 맨바닥에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세우려 애쓰는 행위를 3시간 정도씩 반복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지속적인 무의미한 행동이 타인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간다. 간혹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같이 세워보자’고 제안하면 십중팔구 거절하고 떠나간다.”

전시실에는 흙을 얕게 깔고 나무 100여 그루를 빽빽이 세워놓았다. 입구에는 소책자 5권을 비치했다. 심보선(시인) 박다솔(희곡작가) 박솔뫼 씨(소설가) 등에게 전시 표제만 알려주며 거기서 연상되는 바를 자유롭게 써 달라 요청해 받은 글이다. 수풀 속에 드문드문 간이의자를 놓아 잠시 앉아서 그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주변을 지나다 들른 사람들이 편히 거닐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내 작업과 행위의 의미를 해석하는 스트레스를 관람객에게 떠안기고 싶지 않다. 뭐가 예술인지, 나는 모른다. 오늘 내게 뭐가 중요한지는 안다. 일용할 양식과 잠자리. 그뿐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두산연강예술상#유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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