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하나하나, 처절한 비극의 독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요절작가 류인 유작전 ‘경계와 사이’

류인 작가가 숨지기 2년 전인 1997년 만든 타이틀 미상의 유작.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류인 작가가 숨지기 2년 전인 1997년 만든 타이틀 미상의 유작.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조각가 류인(1956∼1999)의 작품은 보기에 즐겁지 않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6월 26일까지 열리는 그의 유작전 ‘경계와 사이’를 함께 보러 가자고 20대 여성 큐레이터에게 제안하자 대뜸 그가 답했다.

“저는 그 작가 작품 보기가 무서워서요. 그냥 혼자 가세요.”

병마에 시달리다 43세에 요절한 류 씨가 사망 2년 전에 완성한 제목 미상의 한 작품은 나무뿌리에 가슴 복판을 관통당한 사내의 모습을 표현했다. 나무 밑에 묻힌 시체가 조금씩 자라난 뿌리에 결국 가슴이 뻥 뚫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태어나 살아가다 보니 나무뿌리가 몸의 일부임을 뒤늦게 깨닫게 돼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두려워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적극적으로 이입하며 바라보기는 꺼려진다.

작가가 추상미술화가 류경채와 희곡작가 강성희 부부의 아들이었다는 기록은 전시를 보고 나와 한참 뒤에 찾아봤다. 전시실 조명이 그렇게 의도한 까닭도 있겠지만 작품 9점이 모두 제각각 한껏 연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음 편안히 그들의 무대를 바라보기 어려운 것은 하나같이 처절한 비극 모놀로그이기 때문이다.

팔이 잘려나간 채 시멘트 하수도관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남자가 문득 관람객을 돌아보며 팔 잘린 이유를 담담히 설명할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내려친 쇠뭉치에 짜부라진 얼굴, 숨통이 막힌 듯 단단히 붙들린 목 줄기, 금세 바스러질 듯 녹슨 채로 늘어진 몸뚱이…. 차마 말로 옮기기 어려운 형상으로 쇠사슬에 목 매달린 남자도 있다.

힘은 명징하게 전해진다. 자신의 몸에서 떨칠 수 없는 아픔을, 왜곡하고 변형시킨 작품의 신체에 박아 넣은 흔적이 오롯하다. 오래 응시하기 괴로운 탓도 있었지만 마침 왁자지껄 박장대소하는 관람객 한 떼가 지하 전시실로 밀려들기에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빠져나왔다. 최소한 정숙을 부탁하는 표지 하나라도 자그맣게 붙여 놓는 편이, 작가의 분노와 관람객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될 거다. 02-541-570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류인#경계와 사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