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하얀 찔레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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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꽃떨기들이 울긋불긋, 흐드러진 자태를 뽐내는 5월이다. 산과 들과 내, 어딜 가도 꽃 멀미가 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하얀 찔레꽃에서도 맑은 향기가 났다.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가수 이연실 씨가 부른 ‘찔레꽃’의 서글픈 사연은 느끼지 못했다. 하긴 찔레꽃이 참꽃처럼 고픈 배를 움켜쥐고 먹는 구황식물(救荒植物)이었음을 아는 이가 있을 리 없으니.

그런데 찔레꽃 색깔은? 누구는 하얀 찔레꽃을 노래하고 누구는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하니…. 약초도감 등의 자료도 그렇고, 실제로도 찔레꽃은 흰색, 또는 분홍빛 도는 흰색이다. 그러니 붉은 찔레꽃은 ‘없다’. 혹시 유전자 변형을 했으면 모르되.

‘민들레 홀씨 되어’도 틀린 말이다. ‘홀씨’는 식물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해 만든 생식 세포다. 버섯, 고사리 같은 식물의 포자(胞子)다. 그런데 민들레는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긴 하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엄연한 종자식물이다. 따라서 민들레에 홀씨는 ‘없다’.

향기가 코를 찌르는 아까시나무도 억울하다. 많은 이가 ‘아카시아’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 여기엔 1972년에 발표된 ‘과수원길’이라는 노래가 ‘한몫’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이 노랫말과 1976년에 나와 인기를 끈 ‘아카시아’ 껌에 익숙해진 언중은 ‘아카시아’라는 말을 꾸준히 사용했다. 결국 우리 사전도 아카시아를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올려놓았다.

어린 꽃봉오리는 ‘몽우리’일까, ‘몽오리’일까. ‘꽃봉오리’의 글꼴에 이끌려 몽오리로 아는 이가 많지만 몽우리가 옳다. 망울 또는 꽃망울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몽오리가 있긴 한데, ‘작고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것’을 뜻하는 북한어이다. 참, 말맛이 좋아 문학적 표현에 자주 나타나는 ‘벙그러지다’는 ‘벙글어지다’가 옳다. ‘아직 피지 아니한 어린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기 위해 망울이 생기다’를 뜻하는 ‘벙글다’에 보조동사 ‘(-어)지다’가 붙은 것이다.

요즘 꽃들도 이상 기후에 힘들어한다. 잘못 입력된 ‘철다툼’을 벌여야 하기 때문. 철다툼은 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러대는 것을 뜻하는데 이상 기후가 꽃 피는 순서도 헷갈리게 만든 셈. 꽃이 피는 순서가 뒤바뀌면 어떤가. 꽃향기에 어찔어찔해지는 요즘, 행복하지 않은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찔레꽃#아까시나무#아카시아#과수원길#꽃봉오리#몽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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