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천재성… 큐브릭의 영화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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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릭/제임스 네어모어 지음/정헌 옮김/584쪽·2만8000원·컬처룩

스탠리 큐브릭(왼쪽 사진)이 20년 넘게 구상한 이야기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각색해 연출한 영화 ‘A.I.’ 의 결말부 장면. 저자는 “영화 검열에 도전한 지성인 큐브릭과 포스트모던 대중주의자 스필버그의 합작”이라고 썼다. 동아일보DB
스탠리 큐브릭(왼쪽 사진)이 20년 넘게 구상한 이야기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각색해 연출한 영화 ‘A.I.’ 의 결말부 장면. 저자는 “영화 검열에 도전한 지성인 큐브릭과 포스트모던 대중주의자 스필버그의 합작”이라고 썼다. 동아일보DB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시대에 스탠리 큐브릭(1928∼1999)에 대한 글을 읽는 건 아이러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는 제작사의 일회용 도구처럼 영화감독이 소비되는 지금 상황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고통의 여인, 전면전, 우주 너머, 프로페셔널 영화, 결투, 호러 쇼, 전사들, 연인들…. 각 장의 제목은 큐브릭의 영화를 제작연도 순으로 하나씩 지칭한다. ‘롤리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배리 린든’ ‘샤이닝’ ‘풀 메탈 재킷’ ‘아이즈 와이드 셧’…. 에필로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자로 캐스팅돼” 완성한 20년 구상 프로젝트 ‘A.I.’다.

문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금기의 로맨스, 블랙코미디, 우주 SF(공상과학)물, 엽기잔혹극, 역사드라마, 스릴러, 전쟁서사, 포르노심리극…. 연속성을 일부러 배제한 듯한 행보다. 전능한 신이 ‘심심한데 잠깐 지구에 가서 영화감독이란 걸 한번 해보고 와야겠다’ 하고 놀다 떠난 흔적 같다.

“큐브릭은 결코 투자사나 배급사에 의해 필름이 삭제되거나 재촬영되거나 폐기되는 일을 겪
지 않았다. 시사 뒤 약간의 수정 작업도 직접 했다. 늘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켰기에 예술가와 투자자 사이의 갈등이 상품화한 ‘디렉터스 컷’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

공포물을 잘 만들거나 액션에 일가견을 보이거나 SF 연출에 특출하거나 해야 제작사의 간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지금의 할리우드 감독들로서는 짜증날 만큼 부러운 선배일 거다. 게다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은 해당 스타일과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큐브릭은 생전에 작가주의를 옹호하는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경직된, 겉치레뿐인, 훈계하려 드는, 과대평가된 감독”이라는 혹평에는 그가 누린 연출 권력에 대한 질투가 조금쯤 섞여 있지 않았을까.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 결말부를 보다 극장에서 나와 버린 ‘A.I.’를 15년 만에 다시 보고 싶어졌다. 큐브릭은 전무후무한 행운아 감독이 틀림없지만, 그가 없었다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꽤 많이 불행했을 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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