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3명이 말하는 ‘까스텔바작 미술전’ 바로보기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6월 1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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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성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아끼는 작품들을,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할 생각을 했을까?’

이번 인터뷰는 이런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장 샤를 드 까스텔바작(Jean Charles de Castelbajac)의 아시아 최초 미술전 ‘새도우즈 오브 투모로우(Shades of Tomorrow)’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네모(NEMO)에서 열리고 있다. 기간은 6월12일~7월3일.

이번 전시는 국내에 패션 디자이너로만 알려져 있는 까스텔바작의 아시아 최초 기획 전시로 다양한 그의 작품 중 특정 시기의 작품들을 특별하게 구성했다.

전시회가 국내외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불행했던 시기 작품들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가장 친하게 지냈던 키스해링(Keith Haring)의 죽음과 이혼, 친구의 자살 등을 잇달아 겪으며 집안에 칩거했던 시기에 그린 작품들이다. 작가는 이 시기 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기 꺼렸고, 덕분에 지금까지 이 작품들을 직접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작품들을 한국에서 처음 공개했을까. 그의 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프랑스 파리 14구역에 있는 작가의 집을 3번 방문하고, 12번이나 만나서 설득한 큐레이터 최은주 아트딜라이트(Art Delight) 대표와 펠릭스 박, 우디 킴 세 사람을 만났다.
사진 좌측부터 큐레이터 우디 킴, 펠릭스 박,  최은주 아트딜라이트 대표
사진 좌측부터 큐레이터 우디 킴, 펠릭스 박, 최은주 아트딜라이트 대표
-메르스 공포 때문에 공연이나 전시회가 고전하고 있는데도 오프닝 세리모니에만 1500명 이상 다녀갔다. 통상 VIP만을 초대하는 미술전 오프닝 관례를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데.
“먼저 이번 까스텔바작 아시아 최초 미술전 오프닝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재계 인사들과 디자이너, 건축가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비정상회담의 줄리앙이 멋진 디제잉을 선보이기도 했다. 말씀대로 1500명 이상의 VIP들이 다녀갔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숫자다. 그러나 전시의 성공 여부는 관객 수가 아니라 작품과 관객의 소통에 있다고 본다. 파티를 즐기기 위한 1500명이 아니라 까스텔바작의 작품과 퍼포먼스를 감상하기 위한 1500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우리를 매우 흥분시켰다.”

-어떻게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나.
“까스텔바작이 디자이너로서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가 앤디워홀, 바스키아, 키스해링 등과 영감을 주고받은 화가라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카니야 웨스트 등 세계 미술계의 빅 콜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작가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를 패션디자이너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근작들은 아주 강렬하고 밝은 느낌이다. 작품을 통해서 까스텔바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작가 특유의 밝은 색감과 위트가 뒤섞인 그림 속에 수평적 사회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때론 공존을 이야기하고 때론 개인의 고독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생을 통해 고찰했던 정체성과 계급, 사회구조, 인간에 관한 철학적 성찰들을 그 특유의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녹여냈다. 까스텔바작 스스로도 얘기하듯 그는 유토피아를 열망하던 시대의 사람이다. 흔히 디스토피아의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 희망을 갖는 것이 왜 나쁘냐고 우리에게 반문하는 듯 하다.”

-Jean-Charles de Castelbajac의 de는 프랑스에서 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까스텔바작은 부계는 1000년 전통의 귀족가문이고, 모계는 신흥 부르주아 가문 아닌가. 그런 대단한 집안 출생의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끊임없이 사회구조와 정체성, 평등에 대해 얘기한다니.
“프랑스는 시민이 직접 왕을 단두대에 처형했던 나라다. 모든 신분제를 강력하게 철폐했으며 비 공산권 유럽국가 중 가장 강력한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이 벌어졌던 나라 중 하나다. 68혁명의 시대에 귀족이란 더는 특권층이 아니었다. 실제로 까스텔바작의 아들 ‘길램 드 까스텔바작’을 파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그의 유년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프랑스에서 이름 중간에 '드' 가 들어가는 어린이의 삶이 얼마나 피곤하지 너는 상상도 못 할거야…’ 이런 변혁의 시대가 그에게 계급과 사회구조에 관해 일찍 눈을 뜨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 전 세계 최초 공개가 많다. 특히 90년대 작품들은 모두 세계 최초 공개라고 들었다.
“올해 초 프랑스 남부에 있는 그의 고성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그곳에 소장돼 있던 그의 90년대 작품들을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로 놀라웠다. 90년대는 까스텔바작에게 매우 암울했던 시기다. 절친했던 키스해링이 죽었고 이혼의 아픔에 괴로워하던 시기였으며, 모든 것을 털어놓던 친구가 자살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는 성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채 그림만 그렸다. 그것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 근작들과 전혀 다른 이유다. 같은 작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르다. 미술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작품들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까스텔바작이 개인적인 작품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때부터가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파리를 3번 방문했고 12번의 미팅을 가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물론 조심스럽기도 했다. 귀중한 작품들이었고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먼저 선보인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이 따랐다. 그렇지만 작품은 관객과 소통할 때야말로 빛을 발한다는 믿음 하나로 작가를 설득했다.”

-까스텔바작의 정체성을 하나로 국한지어야 한다면 패션디자이너와 아티스트, 이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 질문에 답은 ‘모른다’이다. 다만 왜 모르는지는 이유가 있다. 까스텔바작의 젊은 날의 일화가 하나 있다. 언젠가 바티칸은 그에게 프랑스를 찾은 교황과 주교, 신부 그룹을 위해 특별 예복들을 디자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황의 예복 디자인을 의뢰 받은 세계 최초의 디자이너가 된 것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일에 착수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예복 디자인이 탄생했다. 그렇지만 교황, 주교, 신부의 예복 디자인들이 너무도 확연히 구분돼 가톨릭의 계급적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드러내는 듯한 그런 디자인이었다. 마침내 예식은 거행됐다. 그의 예복을 입은 신부와 주교 그룹이 자리를 잡고 뒤를 이어 교황이 등장했다. 그리고 교황의 등장에 전 세계가 술렁였다. 예복 디자인이 가장 아래 단에 위치한 수 만 명의 청년 신도들이 입은 티셔츠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이에 열광했고 교황은 그에게 눈물로 화답했다. 단 한 명의 아티스트가 가톨릭 전체가 안고 있었던 고질적 계급 문제를 가장 우아한 방법으로 세계에 공론화한 것이다. 여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까스텔바작이 정말 단순히 예복을 디자인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그의 철학을 펼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연 이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까.”
사진=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사진=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이번 전시의 가장 대표작은 무엇인가. 또 한국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사실 90년대 작품들 모두가 대표작이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가장 공을 들여서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 작품을 반드시 꼽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키스해링의 초상화’가 아닐까. 죽음을 목전에 둔 병실에서까지 까스텔바작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키스해링이었다. 이처럼 각별했던 키스해링이 죽고 그를 그리워하던 작가가 키스해링 사후 3년 뒤에 완성한 그림이다. 피처럼 붉은 바탕 위에 생전에 함께 작업했던 도자기를 사이에 두고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키스해링의 초상화는 그 색감만큼이나 강렬하다. 이 작품을 저희 아트딜라이트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한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관객들이 꼭 와서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전시 이후 까스텔바작의 행보는.
“8월에 대구 DTC 섬유박물관에서 특별전을 가질 예정이며, 9월에는 벨기에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현재 수십 개의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 중이며, 프랑스 오를리 공항 전체 리뉴얼 디자인을 맡았다. 또한 2016년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프랑스 대표 아티스트로 선정돼 한국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펼칠 예정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다. 우리는 까스텔바작이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일을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아트딜라이트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아트딜라이트는 3명의 독립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전시기획팀이다. 영국에서 수학 후 슈페리어 갤러리 초대관장을 역임한 최은주 큐레이터와 독일 출신의 큐레이터 펠릭스 박이 공동 설립했으며,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우디 킴이 후발주자로 참여했다. 아트 컨설팅 및 마케팅, 전시 기획을 전문으로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전시를 기획, 한국에 소개하는 한편 한국의 예술가들을 외국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조창현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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