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으로 힘과 용기를…”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의 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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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최고의 소리를 세상에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 음악이 마음이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난 9일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앞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리셉션에서 300여 명의 장애인과 회의 관계자에게 감동의 연주를 선사한 피아니스트 노유진 씨(28)가 날마다 드리는 기도다. 그는 출생 직후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산소가 너무 많이 주입되는 바람에 시력을 잃었다. 햇빛조차 느낄 수 없는 완전 실명(失明) 상태. 평생 그의 눈은 어머니 양유희 씨(55). 행사장에서도 어머니는 딸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노 씨는 13세 때인 2000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의 미래는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14세 때 교회 예배 시간에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듣다가 문득 “엄마, 나 피아노를 배워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불현듯 다가온 피아노는 그의 인생이 됐다. 미국의 유명 음대인 ‘뉴잉글랜드 콘저바토리 오브 아트(NEC)’에 진학해 학사(4년)와 석사(2년), 전문연주가 예비과정(2년)을 마쳤다. 그 사이 미국 내 몇몇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음악 전문가들은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시각장애인이 기적의 소리를 연주한다”고 극찬했다.

피아니스트로서 노 씨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악보 외우기. 어머니 양 씨는 “딸은 악보 외우기를 비빔밥 만들기에 비유한다. 비장애인은 눈대중으로도 요리할 수 있지만 딸은 그 많은 음식재료 하나하나의 크기 모양 등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다 암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상하기 힘든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노 씨는 단 한 번도 짜증이나 화를 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넌 화나는 일이 정말 없니?”라고 어머니가 일부러 물어볼 정도. 그래서 노 씨는 별명도 ‘천사’다.

노 씨는 종종 “앞으로 의학이 발달해 시력을 찾을 수 있게 되더라도 수술 받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안 보이는 채로) 살래요. 지금의 나와 내 삶에 만족하니까요”라고 말한다. 어머니 양 씨는 “그 말 들을 때가 엄마로서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딸은 ‘시각장애인이 저 정도 연주하다니 대단하다’는 동정심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연주 테크닉은 (비장애인을) 따라 잡기 어렵겠지만 ‘깊은 마음 속 울림의 소리’로 당당하게 승부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 꿈과 소망을 주고 싶다’는 딸의 간절한 기도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요.….”

11일 딸 대신 1시간 넘게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한 어머니 양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더니 끝내 수화기 너머로 조용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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