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기술의 역사, 예술로 거듭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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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계의 사원… 스위스 제네바 ‘파텍필립 박물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박물관에는 500년 전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시계까지 2000개가 넘는 시계들이 보관되어 있다. 스위스의 시계 사원이라 불릴만 하다. 파텍필립 제공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박물관에는 500년 전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시계까지 2000개가 넘는 시계들이 보관되어 있다. 스위스의 시계 사원이라 불릴만 하다. 파텍필립 제공
시계의 도시답다. 스위스 제네바에는 호텔에도 ‘메이드 인 스위스’ 명품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계 매장이 수두룩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곳곳이 시계 매장이다. 가격은 국내에 비해 약간 저렴한 듯 보였지만 살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격도 명품이니까. 그런데 시계 업계 관계자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곳이 있다. 파텍필립 박물관이다. 그래서 지난달 28일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박물관을 찾았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박물관의 외부 모습.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박물관의 외부 모습.
파텍필립 박물관은 2001년 처음 문을 열었다. 1919년에 세워진 고풍스러워 보이는 4층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 안에는 1919년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세월을 머금은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500년 전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시계까지 2000개가 넘는다. 그래서 시계 업계 관계자들은 파텍필립 박물관을 ‘살아있는 시계의 사원’으로 부르기도 한다. 박물관에서는 1839년 파텍필립이 설립된 때부터 지금까지 파텍필립이 만든 시계 컬렉션들도 만나볼 수 있다.

미닛 리피터(시와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크로노그래프(1초 이하의 시간 간격 등 시간간격을 기록하는 장치) 등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 있는 파텍 필립의 회중시계. 1870년부터 만들어졌다.
미닛 리피터(시와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크로노그래프(1초 이하의 시간 간격 등 시간간격을 기록하는 장치) 등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 있는 파텍 필립의 회중시계. 1870년부터 만들어졌다.
솔직히 말해 지루할 것 같았다. 2000개가 넘는 시계만 전시되어 있는 공간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가도 가도 시계만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박물관 입구에서 알렉세이 마크로브 파텍필립 본사 가이드는 “언제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시간 속에 있었던 ‘물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도 시큰둥했다. 금테 두른 시계, 보석 박힌 시계, 달 모양 그려진 시계 등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해 봐도 시계는 거기서 거기였다.

제네바를 시계의 도시로 부르는 이유

그런데 정반대였다. 기자는 제네바를 왜 시계의 도시로 부르는지 이곳에서 알았다. 곳곳에 시계가 있어서가 아니다. 시계의 예술성과 역사 때문이었다. 박물관을 돌아보면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파텍필립이 17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대대로 전해준 건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시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경외감마저 든다.

박물관 1층에는 오래 전 장인들이 사용했던 소품과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오래 전 장인들이 사용했던 소품과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장인들이 사용했던 소품과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선조들의 물건을 떠올리게 한다. 고개를 휙 돌리면 나무로 된 책상들과 그 위에 자리한 기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구는 시계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인데 재봉틀과 비슷하게 생겼다. 현재 파텍필립의 공장에 가면 이 기구의 10배 크기가 넘는 ‘왕재봉틀’도 있다. 물론 훨씬 복잡하게 생겼다. 기계 모양이 비슷한 건 파텍필립이 아직까지 전통 방식으로 시계를 손으로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게임은 2층부터다. 파텍필립의 시계는 2층과 3층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2층에서는 근대의 시계들을, 3층에서는 그보다 이전 시기의 고시계들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은 작품이 주인공인 만큼 조명이 어두웠다. 곳곳에 배치된 조명들도 시계와 전시물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정말 다채로운 시계들이 많았다. 1800년대의 시계는 대부분이 회중시계였는데 액세서리 성격이 강했다. 가이드는 “주로 귀족들이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3층에는 고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16세기 귀부인이 사용했던 부채 시계. 부채 오른쪽에 작은 시계가 달려있다.
박물관 3층에는 고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16세기 귀부인이 사용했던 부채 시계. 부채 오른쪽에 작은 시계가 달려있다.
그래서인지 이 회중시계도 하나하나가 정말 작품이었다. 덮개를 화려한 문양부터 꽃과 나비 그림까지 색색으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물 그림과 당시 시대상을 스케치한 그림까지 있었다. 여인이 생각하는 모습, 의자에 앉아 책상에 기대 있는 모습, 잠든 모습…. 자세히 보면 머릿결부터 옷매무새까지 정말 세세한 묘사다.

파텍필립이 지켜온 시계 역사

더 가다 보면 지금의 시계 모습을 갖춘 시계들이 등장한다. 첫 작품은 1916년 만들어진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다. ‘슈퍼 컴플리케이션 그레이브’(1933년)도 보인다.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은 단어 뜻 그대로 복잡함을 의미한다. 수백 개의 부품들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시계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슈퍼 컴플리케이션 그레이브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고난도의 기술이 접목된) 시계로 알려져 있었다. 현재 가장 복잡한 시계인 ‘칼리버 89’ 역시 파텍필립이 만들었다. 이 시계는 파텍필립이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동전 2∼3배 크기의 시계 몸통에 1728개의 부품이 들어갔다.

1800년대 공작부인이 썼던 반짇고리. 에나멜로 장식된 반짇고리에조차 시계가 장식돼 있다.
1800년대 공작부인이 썼던 반짇고리. 에나멜로 장식된 반짇고리에조차 시계가 장식돼 있다.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라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파텍필립 박물관의 3층과 4층을 둘러봐야 한다. 3층에는 16세기의 문화재나 다름없는 고시계들이 있다. 당시의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라기보다 장식품에 가까워 보였다. 부채 손잡이나 보석함 한쪽에 시계가 달려 있었다. 시계가 일종의 장신구인 셈이다. 4층에는 8000여 권의 시계와 관련된 서적이 보관되어 있는데 1700년대에 독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어린이 시계 교육 책까지 있었다. 책을 한 권씩 모아가는 사이 파텍필립의 긴 역사도 함께 흘러갔으리라. 파텍필립은 시계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한다. 시계를 기술이 아니라 예술로 접근하기 때문에 100분의 1mm 크기 부품까지 손으로 만든다. 그래서 파텍필립의 시계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계에는 끝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에는 끝이 없으니까.

제네바=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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