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스러져가는 ‘시네마천국’의 추억… 평론가+철학자, 함께 되살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씨네샹떼/강신주 이상용 지음/880쪽·3만3000원·민음사
1인용 영사기 같은 스마트폰 시대
다시 시네마토그래프로 회귀해 함께 즐길 수는 없나

영화를 보러 극장 갈 짬이 있는가? 어째 갈수록 쉽지 않다. 평론가 이상용 씨는 서문에서 “지금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가 스마트폰과 노트북 속에 부활한 시대”라고 썼다. 1889년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는 필름을 회전시키며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도록 한 1인용 영사기다. 6년 뒤 뤼미에르 형제가 고안한 스크린 영사용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가 영화 관람 방식의 전형을 구축하면서 키네토스코프는 소멸한 듯했다. 하지만 지하철, 버스, 카페에 앉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21세기 관객은 시네마토그래프보다 키네토스코프를 사랑한다.

이 서문은 그대로 책의 존재가치를 설명한다. 영화 보러 외출할 엄두가 안 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글 읽을 짬’을 묻는 것은 언뜻 어리석어 보인다. 10여 년 전에는 영화 잡지가 지하철역 가판대의 인기 상품이었다. 글과 영상의 플랫폼 지배구조에서 스마트폰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런 모습은 사라졌다. 글과 영상의 소비 방식이 바뀐 게 아니다. 글이 없어지고 영상은 단순해졌다.

후반부 주제로 다룬 ‘밀리언 달러 베이비’(위 쪽)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저자들의 대화는 두 영화에서 모두 ‘관계 맺음으로 인한 존재 가치의 확인’에 주목했다. 민음사 제공
후반부 주제로 다룬 ‘밀리언 달러 베이비’(위 쪽)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저자들의 대화는 두 영화에서 모두 ‘관계 맺음으로 인한 존재 가치의 확인’에 주목했다. 민음사 제공
지난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씨네샹떼(Cin´e Chant´e·영화예찬)’ 대담은 권토중래한 키네토스코프 전성시대에 조금씩 부스러져 가는 시네마토그래프의 가치를 돌이키려 한 자리였다. 이상용 씨와 철학자 강신주 씨는 영화 25편을 함께 관람한 뒤 대화를 나누고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대담 뒤 매주 작성한 글 모음이 이 책이다. 강 씨는 “내 글에는 이 선생의 흔적, 이 선생의 글에는 내 흔적이 남았다. 영화보다 서로의 생각에 더 감명받은 적이 많다”고 썼다.

두 사람의 기록을 여느 영화평론집과 조금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든 키워드는 ‘함께’다. 키네토스코프는 개별 관객에게 즐거움과 쾌감을 편리하게 안겨주지만 이어폰을 빼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모든 감흥이 흩어진다. 중3 여름의 ‘시네마천국’이 지금껏 남긴 애틋함의 절반은 함께 서울 중구 한 극장을 찾아간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얻은 덩어리들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특별한 영화로 간직하게 된 까닭은 졸업식을 마치고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앉아 보았던 종로 극장의 기억이다.

대담 내용은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이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 선생님은 영화평론가답게 초기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부스러기 말까지 시시콜콜 옮겨 적어야 했을까. 개정판이 나온다면 군살 빼고 단출하게 부피를 정리해 달라 청하고 싶다.

25편 글 뭉치를 차례로 죽 훑기보다는 관람한 영화를 다룬 부분만 선택해 살피기를 권한다. 영화에 대한 글은 쓴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 또는 예비 관객에게 폐를 끼치기 쉽다. 최종 결과물을 스치듯 경험한 뒤 정리한 평론가나 기자의 글과 창작자 속내 사이의 교집합은 늘 미심쩍다. ‘이런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 아닌 확신에 찬 단정적 분석의 문장이 적잖아 읽어 나가기 껄끄럽다.

그럼에도 책의 효용은 확실하다. 시간을 어렵게 쪼개 표를 예매하고, 소중한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서로를 신경 쓰며 같은 것을 바라보고, 극장을 빠져나와 생각을 주고받는 시간. 그 충만한 행복의 기억을 돌이켜 주는 것만으로도.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