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당신의 서재는 안녕하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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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 지음/정수윤 옮김/248쪽·1만3000원/정은문고
3만권 장서가의 ‘책장 다이어트’… “책을 500권 정도로 엄선하라”

‘장서의 괴로움’은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책은 집에 부담을 준다. 집을 지을 때는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 두자’ 등 14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서적이 어울리지 않기에 괴로움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은 홍경택 화백의 ‘서재Ⅱ’. 형형색색의 책이 공간을 잠식해 오니 질식될까 두렵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장서의 괴로움’은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책은 집에 부담을 준다. 집을 지을 때는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 두자’ 등 14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서적이 어울리지 않기에 괴로움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은 홍경택 화백의 ‘서재Ⅱ’. 형형색색의 책이 공간을 잠식해 오니 질식될까 두렵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 책을 읽다 말고 2010년 10월 어느 날에 쓴 일기를 펼쳤다.

“…카를로스 마리아 도망게스의 소설 ‘위험한 책’이 날 돌아버리게 만든다.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대학 여교수가 길거리에서 시집을 몰입해서 읽다가 자동차에 치여 사망한다. 여교수와 한 침대를 쓴 주인공은 그녀 앞으로 도착한 소포 안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묻은 책을 발견한다. 그는 호기심에 발송자인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아 우루과이로 떠난다. 브라우어는 2만 권이 넘는 책을 가진 애서가다. 거실 복도 침실 모두 책에 내주고 욕조 속에 몸을 말아 넣고 산다. 그렇게 책에 미친 사람 이야기에 푹 빠졌는데 어느 순간 내 손바닥만 한 112쪽 분량의 소설이 내 방 안에서 사라졌다. 결론을 읽지 못하니 초조해진다. 내일부터 출근하면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2만 권은커녕 고작 200권뿐인 내 책장을 샅샅이 뒤져도 없다. 출퇴근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여러 번 휘저어도 잡히지 않는다. ‘도망’게스란 이름에 걸맞게 도주한 것인가.”(내 유치한 일기는 그렇게 끝났다)

이후 책을 위험한 물건의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서 책이, 장서가 확신범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장서 3만 권을 둔 저자는 일본 유명 서평가이자 헌책 문화 알리기 운동가다. 그는 일본 유명 문인과 장서가를 만나 취재하고 장서에 얽힌 문헌을 조사해 2010년 10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장서술’을 연재했다. 연재 원고를 14장(章)으로 묶어낸 이 책은 한 장에 한 가지씩 장서에 관한 교훈을 들려준다. 첫 교훈은 이랬다.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그가 만난 도쿄 한 대학 교직원인 독신 남성 네시기 데쓰야(48)는 원래 목조건물 2층에 책과 함께 살았다. 1층에 살던 부모님은 “장서 때문에 천장에서 끼익끼익 소리가 난다. 이러다간 책이 날 죽이고 말거야”라고 했다. 일본의 목조건물과 지진을 생각하면 엄살이 아니다. 그는 작정하고 ‘책이 사는 집’을 지었다.

완성된 집 1층에는 부모님, 2, 3층에는 네시기가 산다. 그는 넓은 거실 천장을 뚫고 2, 3층 복층 벽을 맞춤제작 책장으로 뒤덮었다. 목욕탕 입구에는 ‘목욕 시 독서를 위한 책장’까지 마련했다. 1만5000권을 수납했지만 여전히 장서는 ‘벽을 먹는 벌레’처럼 왕성히 활동했고 헌책을 대량 처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침실에는 책을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해외토픽 수준의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하다. 집에 책이 3만 권쯤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헤아려보니 13만 권이 나오고,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집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기울어지고 심지어 바닥이 꺼지기도 한다.

애주가가 숙취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술자리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장서가도 괴로운 척하면서 장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집착, 자랑에 푹 빠져 있다.

그렇다면 현명한 장서술은 뭘까. 저자는 책을 500권 정도로 엄선하라고 권한다. 500권은 언제든 필요한 책을 찾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치이며, 이 규모 안에서 책 종류를 조금씩 바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문학연구가 시노다 하지메의 입을 빌려 강조한다.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전자책 시대가 열리면 장서의 괴로움이 줄까. 저자의 대답은 확고하게 ‘아니다’이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 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책을 덮는데 기분이 묘했다. 장서술을 배우고자 책을 읽었는데 결국 책장에 책이 한 권 더 쌓였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장서의 괴로움#서재#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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