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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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매트릭스’전… 세계수학자대회 기념 2015년 1월11일까지

수학 기호를 개념적 조형의 언어로 써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가 출품한 ‘큰 곡선을 지닌 포화’(2008년). 작가는 “기호와 공식의 의미를 배제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수학 기호를 개념적 조형의 언어로 써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가 출품한 ‘큰 곡선을 지닌 포화’(2008년). 작가는 “기호와 공식의 의미를 배제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인터넷에서 ‘수학은 아름답다’는 문장을 검색하면 극과 극의 결과가 나온다. 이 주제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이는 수학교사 또는 학자다. 반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슷한 제목의 책 사진에 분노 어린 욕설을 익살스레 붙여 올려놨다.

수학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까.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매트릭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전에 참여한 작가 15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답한다. 13일 개막한 서울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는 전시다.

전시관 초입에 걸린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은 제목 그대로 17년 전 출제된 수능 수리문제 30문항을 30개 이미지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래픽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최성민 최슬기)은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수학적 삶’의 절정이자 끝이 되는 100분간의 30문항은 분명한 비장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7년 수리영역은 정답을 낸 수험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29번 집합 문제를 비롯해 최악의 난도로 지금껏 회자되는 시험이다. 29번 문제는 세로로 길쭉한 청색 직사각형 상단 귀퉁이에 짤막한 직선 하나를 비스듬히 그어 표현했다.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학창시절 연습장을 들춰 보면 그림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송희진 작가의 ‘진리의 성’은 최재경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가 30여 년 동안 써온 노트 10권을 확대해 방 하나에 도배한 설치작품이다. 구아슈(불투명수채물감)로 덧입힌 장식적 이미지 사이사이로 최 교수의 단말마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의상 해야지” “수입 잡았어요” “no problem!” 같은 일상의 낙서가 수학 기호와 뒤얽혀 있다. 숱한 ‘증명 실패’를 뚫어간 고뇌의 흔적이, 성패와 무관하게 맺히는 삶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은 18세기 자신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미터법 지표를 재생산했다. 그는 대리석으로 제작돼 파리 곳곳에 설치된 지표가 당시 기술로는 결코 완벽하게 정확할 수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 그가 출품한 ‘스탠다드 미터’는 오차를 1μ(미크론·1미크론은 1000분의 1mm) 수준까지 줄인 스테인리스 스틸 미터기다. 수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그 밖에 ‘수학자 영화감독’ 예카테리나 예레멘코의 영화 ‘수학의 색깔’, 건축가 국형걸이 구성한 수학적 공간 설치물을 볼 수 있다. 02-3701-95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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