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ining3.0]보르도 와인만 아는 당신, 입맛 살짝 바꿔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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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와이너리 대표에게 듣는 와인 이야기

《 와인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제 와인은 더이상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술이 아니다. 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곁들이거나 친구들과 만나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늘었다. 덕분에 와인은 ‘알아야 마시는 있는 술’이 아니라 ‘즐길 줄만 알면 마시는 술’이 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준 와인 수입량은 26만7400L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6200L)보다 18.2%나 증가했다. 유럽연합(EU)과 칠레, 호주,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덕이다. 또 요즘엔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이 와인전문점 못지않게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와인이 확산되면서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을 ‘특급와인’으로 치던 시대도 지났다. 미국 칠레 프랑스 등 3국의 와이너리 대표로부터 신대륙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미국 파니엔테▼

파니엔테의 래리 맥과이어 대표
파니엔테의 래리 맥과이어 대표
‘돌체 파 니엔테’.

이탈리아어로 빈둥거리면서 느끼는 달콤함을 뜻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여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혼자서 나지막하게 이 문구를 되뇐다. 빡빡한 뉴욕 생활에 지쳐 이탈리아 로마로 간 그는 삶의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에는 ‘파니엔테’라는 와이너리가 있다. 래리 맥과이어 파니엔테 대표는 “와인은 행복해지기 위해 먹는 것”이라며 “와인은 맛 못지않게 경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파니엔테는 마시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와인으로 꼽힌다. 파니엔테 와인의 라벨은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의 그림과 비슷한 아르누보 스타일이다. 와이너리 역시 전경이 아름다워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다.

파니엔테는 1885년 금광업자인 존 벤슨이 세웠다. 그는 금을 캐겠다는 ‘골드러시’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에 왔지만 결국 금 대신 와인을 얻었다. 그런데 1919년 미국에 금주령이 내려져 파니엔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파니엔테는 이후 1979년 묘목업자인 길 니클이 와이너리를 매입하면서 되살아났다. 당시 그가 와이너리의 주춧돌에 새긴 문구가 바로 ‘돌체 파 니엔테’였다.

공교롭게도 파니엔테가 생산하는 디저트 와인 이름도 ‘돌체’다. 광채가 나는 황금색으로 바싹 말린 살구와 무화과 향이 진하고 꿀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게 특징. 아몬드처럼 구수한 오크통의 풍미가 길게 남는다. 내파밸리에서도 가장 서늘한 쿰스빌 지역에서는 아침 안개의 영향으로 귀부 곰팡이(Noble Rot)가 포도송이에 번식해서 포도를 건포도처럼 말려 버린다. 그만큼 포도가 잘 농축되어 달콤함이 강하게 배어나온다.

맥과이어 대표는 “파니엔테 와인은 이탈리아로 ‘아무 근심 걱정 없이’라는 파니엔테의 뜻 덕분에 축하연에 단골로 오른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선 장동건, 고소영 부부의 결혼식에서 파니엔테의 샤르도네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니엔테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각각 테이블에 올랐다. 그는 “낭만이 살아나는 와인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칠레 에라주리즈▼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가격 대비 맛은 괜찮은, 하지만 최고의 아닌’.

한 때 칠레 와인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최고급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라고 입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식을 뒤집은 칠레의 와이너리가 있었다. 칠레의 와인명가 ‘에라주리즈’로 2004년 독일 베를린에서 와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연 시음회에서 보르도의 1등급 와인과 이탈리아의 슈퍼 토스카나 와인 등을 물리치고 칠레 와인을 1등 자리에 올렸다. 이는 ‘베를린의 심판’이라 회자되고 있다.

에라주리즈는 1870년 설립된 뒤 145년 간 와인을 만드는 와인 명가로 꼽힌다. 에라주리즈 가의 5대손이자 베를린의 심판을 기획했던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회장(54)은 “최고의 땅에서 최고의 와인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라주리즈의 창업자인 돈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1832∼1890)가 현재의 와이너리를 선정한 과정을 소개했다.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스는 칠레의 와인 생산자로서는 처음으로 보르도를 방문한 이후 보르도에서 직접 골라온 포도 묘목으로 아콩카과 밸리에 포도밭을 조성했다.

“당시 칠레 와이너리들이 프랑스 보르도와 유사한 토양인 산티아고 부근의 ‘마이포 밸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스는 산티아고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아콩카과 밸리’를 개척했어요.”

실제로 이 지역은 북쪽에 위치해 적도에 가까워 포도가 햇볕을 많이 쬘 수 있었다. 동시에 연 평균 기온이 프랑스 보르도보다 높으면서도 일교차가 커서 포도의 당도와 산도가 적절하게 조절되고 강우량이 적어 최적기까지 포도를 키울 수 있었다.

채드윅 회장은 ‘천혜의 토양’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와이너리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돈 막시미아노’라는 이름으로 탄생시켰다. 이 와인은 체리와 라즈베리, 카시스, 헤이즐넛 향이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맛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드윅 회장은 전통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보르도의 양조 연구소에서 ‘20세기 와인의 품질혁명’을 이끈 와인 양조가로 꼽히는 에밀 페노로부터 직접 배워왔다. 또 1995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의 황제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 제휴해 합작투자사인 세냐를 세우기도 했다. 채드윅 회장은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담그는 ‘이스테이트 와이너리’(Estate Winery)의 전통을 이어가 최고의 와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페블레▼

페블레의 에르완 페블레 대표
페블레의 에르완 페블레 대표
“프랑스 와인이오? 보르도 와인이 전부는 아니에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7대째 ‘페블레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에르완 페블레 대표(35)는 프랑스 와인의 등급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고급 와인을 점차 많이 찾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페블레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인 ‘코르통 클로 데 코르통 페블레 그랑 크뤼’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와인은 부르고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상급인 그랑크뤼 와인 중에서도 품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페블레 대표는 20대에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7대째 이어온 와인 맛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과감하게 경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선 2007년 이전 페블레 와이너리의 와인은 20년 이상 숙성시켜야 진가를 발휘하는 묵직한 스타일이었다면, 2007년 이후의 와인은 오래 숙성시키지 않고도 산뜻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맛이 바뀌었다.

“이전 와인이 타닌(떫은 맛)이 넘치고 남성다운 느낌이었다면, 2007년 이후부터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와인을 만들려고 했어요. 소믈리에들로부터 신선하고 과일 향이 좋다는 평가를 들었지요.”

그는 부르고뉴 와인을 ‘와인의 종착지’라고 단언했다. 그는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그 이름과 체계가 복잡해 와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다고 정평이 나 있다”며 “연간 5000∼7000병만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인 로마네 콩티도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고 말했다.

보통 스위트 와인으로 와인을 즐기기 시작해 보르도와인, 부르고뉴 와인으로 옮겨간다는 것. 하지만 와인의 복잡성을 이해해야 부르고뉴 와인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부르고뉴 와인을 가장 마지막에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페블레 대표는 “점차 한국에서도 부르고뉴 와인의 수요가 높아져가는 만큼 한국 와인 시장이 성숙해 간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영 abc@donga.com·최고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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