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든… 삶은 데칼코마니처럼 같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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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두번째 소설집 ‘알로하’ 출간, 지구촌 보통 사람들의 일상 담아내

김애란과 더불어 차세대 작가 선두주자로 주목받는 소설가 윤고은. 그는 “나의 여러 모습이 소설 속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술 마시고 전화하는 모습은 ‘해마, 날다’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씨 제공
김애란과 더불어 차세대 작가 선두주자로 주목받는 소설가 윤고은. 그는 “나의 여러 모습이 소설 속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술 마시고 전화하는 모습은 ‘해마, 날다’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씨 제공
회사에서 반강제로 시행한 캡슐형 내시경 검사의 부작용 책임을 뒤집어쓰고 회사에서 쫓겨나고(‘P’),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는 책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요리사의 손톱’). 프레디 머큐리가 살던 집에서 그의 이름을 딴 향수를 팔고(‘프레디의 사생아’), 소설의 배경이 되기로 계획한 도시는 모든 공간을 소설에 맞춰 부수고 세운다(‘Q’).

윤고은 씨(34)의 두 번째 소설집 ‘알로하’(창비)는 현실 밀착형 상상력으로 단단하게 조립돼 있다. 소설가 김인숙 씨는 윤고은이라는 이름에서 ‘매번, 탱탱, 소리를 낼 듯한 상상력’을 생각한다고 한다.

작가는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사업을 하다가 망했을지 모른다”면서 웃었다. “어느 순간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의 장점은 그때그때 메모를 잘해 둔다는 점? 사업 아이템을 메모해 뒀다가 소설 속에 가져와서 바느질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잘 적어두면 언제든 써먹을 수 있어서, 작가라는 직업이 좋다.”

2010∼2013년 작 단편 아홉 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을 두고 작가는 ‘돌려 말하기’라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무명인들의 이야기다. 이번 소설집에는 서울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미국 하와이, 스페인 세비야 같은 곳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삶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무늬를 찍어낸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표제작은 하와이 지역신문 ‘넥스트 호놀룰루’의 부고 담당 기자의 시선을 좇는다. 그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노숙자의 부고 기사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매일 노숙자를 만나 그의 인생사를 경청한다. 노숙자의 이야기를 따라 그는 하와이 곳곳을 돌며 흔적을 찾는다.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은 타인의 기억에서 완성되므로, 누군가의 기억에 스며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 증명임을 담담하게 전한다.

2011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해마, 날다’의 주인공은 술 취한 이들의 전화를 받아주는 해마005 서비스에서 일한다. 어느 날 취객이 말한다. “언니는 거래처 있어요? 거래처 말이야, 거래처. 사귀는 사람 있느냐고요. 나는 두 달 전에 거래처랑 쫑이 났거든요. 2년 사귀었는데 정규직 전환도 안 해주지, 자르지도 않지, 질질 끌기에 그냥 제가 사표 쓰고 나왔어요.” 연애와 결혼조차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빗대어 말한다.

작가는 처음에 잡지 기자나 라디오 구성작가가 되고 싶어서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소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과내에서도 시나 희곡 분과는 기웃거렸지만 소설 분과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잡지 ‘이프’에 기사를 싣기도 하고 방송작가도 해보려다가 대학 3학년 때에 소설 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고 지금까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전 세계의 서점에 내 소설이 꽂혀 있는 것이 꿈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오페라극장을 개조한 서점 엘 아테네오에! 여러 언어로 번역돼야 꿈이 이뤄지겠지만… 안 되면 찾아가서 슬쩍 서가에 꽂아놓으려고 한다.(웃음)”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윤고은#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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