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신세계’ 작곡 드보르자크는 철도狂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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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명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는 과거보다 다양하고 깊은 마니아 활동이 가능합니다. 직업보다 취미에 열정을 쏟는 사람도 많죠. 마니아건, 일본어로 ‘오타쿠’라고 부르건, 관련 정보를 쉽고 깊게 얻을 수 있는 오늘날이기에 더욱 빠져들기 쉬운 것 같습니다.

대작곡가 중에서도 취미광의 선구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사진)가 그 대표 격입니다. 그는 ‘철도 마니아’의 선조였습니다. 기관차 모델, 노선 정보, 시간표를 꼼꼼히 기록하며 많은 열정을 쏟았습니다. 시골 냄새 풍기는 ‘보헤미아 전원풍’ 작곡가로 알려진 그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 매료된 계기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침 일찍 프라하 중앙역에 나가 역무원들을 깍듯이 ‘모시며’ 온갖 정보를 듣고 메모했다고 합니다.

그는 51세 때인 1892년 미국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됐습니다. 처음엔 뉴욕의 역무원들을 몰라 답답해했지만, 이윽고 프라하보다 기관차 종류도, 노선도 많은 미국의 기차 시스템에 매우 기뻐했다고 하죠.

음악학자들은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4악장 초반의 박진감 넘치는 현악 파트 음형이 기관차의 출발을 묘사한다고 분석합니다. 흔히 이 음형은 영화 ‘조스’의 상어 출현 장면 효과음악과 닮았다고들 하지만 제가 들어도 기차 출발과 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실 ‘신세계에서’보다는 세사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3악장에 ‘조스’와 더 닮은 음형이 나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프랑스 출신 작곡가 오네게르는 1923년 기차 출발을 묘사한 관현악곡 ‘퍼시픽 231’을 발표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기차다’라고 외칠 만큼 묘사가 정밀합니다.

취미광 작곡가로는 드보르자크와 비슷한 시대 활동한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도 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소품을 여러 개 사 모으고 진열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에 단순한 패턴의 반복이 많은 것이 수집욕과 연관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9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임헌정 예술감독 지휘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를 연주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4악장 시작 부분에서 ‘기차 출발’ 또는 ‘조스’를 느껴보면 어떨까요.

유윤종 gustav@donga.com
#안토닌 드보르자크#철도 마니아#신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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