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족보-성가를 금서로 지정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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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활약상 소개하며 日비하
사상범 검거위해 검열대상 올려
천주교책도 日王비판 봉쇄위해 포함

1930년대 일제의 금서 목록에는 독립운동가의 저작이나 사회주의 계열의 도서는 물론 일부 가문의 족보나 동요집, 천주교 성가집 같은 책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당시 일본 경찰 고등계 형사들이 휴대했던 금서 목록 수첩 영인본. 소명출판 제공
1930년대 일제의 금서 목록에는 독립운동가의 저작이나 사회주의 계열의 도서는 물론 일부 가문의 족보나 동요집, 천주교 성가집 같은 책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당시 일본 경찰 고등계 형사들이 휴대했던 금서 목록 수첩 영인본. 소명출판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나 사상범 검거를 맡았던 일본 경찰 고등계 형사는 판매나 소지가 금지된 ‘금서(禁書)’ 목록이 적힌 수첩을 한 권씩 지니고 다녔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1933년과 1937년에 출간된 금서 목록 수첩을 영인본으로 엮은 ‘일제강점기 금지도서 목록’(소명출판)을 보면 당시 검열기관이던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서 금지도서로 공시했던 책을 확인할 수 있다. 총독부 도서과는 매달 자체 검열 내용을 토대로 ‘조선출판경찰월보’라는 비밀 회람문건을 발간했는데 금서 목록 수첩은 이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저술로는 한인애국단의 활동을 기술한 김구의 ‘도왜실기(屠倭實記)’나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혈사’ 같은 책이 금서로 분류됐다.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애국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전주 이씨 의평군(義平君)파 족보’나 ‘은진(恩津) 송씨 족보’처럼 특정 가문의 족보가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끈다. 일제가 족보를 금서로 지정한 이유는 뭘까. 일제강점기 검열 문제를 집중 연구해온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오늘날 족보의 80%가 1910∼30년대 출간됐는데 선조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일본을 왜(倭)로 비하하거나 조명연합군 등 조선과 중국의 협력내용이 포함되면 검열의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동요집에 가까운 ‘소년소녀창가집’이나 ‘소년소녀창극집’ 같은 책도 ‘치안 방해’를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정 교수는 “금서로 지정한 구체적 사유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처분 이유가 ‘치안 방해’인 것으로 볼 때 반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국 비판적 내용이 포함돼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 교수는 “당시 반일지식인은 어린이와 청소년 매체를 통해 반식민지 의식을 고취하고 전파하려 했기에 의외로 청소년 대상 책들이 총독부 검열의 집중 표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는 종교서적인 ‘천주교 성가’도 금서로 지정됐다. 만주사변(1931년) 이후 빠르게 군국주의화한 일본사회의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에 대한 비판의 소지를 원천봉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이쇼(大正) 민주주의’ 시기로 불린 1920년대 초만 해도 관대하게 다뤘던 사회주의나 계급 혁명 관련 저술은 1930년대에 들어서는 철저한 탄압을 받는다. ‘자본주의 해부’ ‘레닌공산당청년회의약사’ 같은 공산주의 서적은 물론이고 ‘카프시인집’처럼 계급주의적 문학작품을 수록한 책도 발행과 유통, 소지가 금지됐다. 중국 지도자 쑨원(孫文)이 주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 관련 서적도 교전국의 책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일제강점기 금서#족보#동요집#성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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