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에게 준 재산, 훗날 가장 효도한 자식이 받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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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 하씨 가문 분재기 공개
홀로 남은 첩의 쓸쓸한 노후 염려… 상속권과 연계 서모에 대한 효심 유도

하원의 첩 감장이 서조모인 자신에게 효심을 다한 손자 철민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을 담은 분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하원의 첩 감장이 서조모인 자신에게 효심을 다한 손자 철민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을 담은 분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배우자에게 유산의 최대 절반까지를 먼저 떼어 주도록 하는 상속법 개정안이 재혼한 배우자와 전 배우자의 자녀 간 갈등 원인이 될 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시대 자녀의 유산 상속 조건을 서모(庶母)에 대한 효심(孝心)과 연계시킨 고문서가 공개됐다.

진양(晉陽) 하씨 가문이 소장한 분재기(分財記·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로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공개했다. 사육신의 한 명인 하위지의 조카 하원(1451∼1518)의 첩 감장(甘莊)이 죽음을 앞두고 1531년 남긴 문서다.

감장은 이 문서가 작성되기 13년 전 남편 하원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았다. 평민 출신 첩 감장이 자식을 낳지 못해 자신이 죽고 나면 쓸쓸하게 늙어 갈 것을 걱정한 남편이 남긴 유서 덕분이었다. 감장이 넘겨받은 유산 규모는 분명치 않지만 혼자 사는 여인이 쓰기에는 부족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유서에 명시된 단서 조항. 하원은 유서에 감장이 생전에는 이 재산을 갖고 있다가 나중에 본처의 자식에게 되돌려주라는 것과 본처 소생 중 누구에게 재산을 돌려줄지는 전적으로 감장의 결정에 맡긴다는 단서를 달았다. 감장이 본처 자식들의 눈에 곱게 비치기 힘든 서모지만, 훗날 이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라도 감장을 대함에 소홀함이 없게 하려 했던 하원의 배려였다.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원이 죽은 뒤에도 본처의 자손들은 감장을 정성스럽게 섬겼다. 손자 철민의 효성이 특히 지극했는데, 이런 철민을 기억하고 있던 감장은 훗날 병세가 깊어지자 유산을 물려줄 대상자로 철민을 지목했다.

분재기에는 ‘(철민이) 가까이 살며 아침저녁으로 내 마음을 편안케 하고 봉제사(奉祭祀)에도 정성을 다했다’고 적혀 있다. 감장이 남긴 재산은 노비 2명, 논과 밭 7마지기, 밥솥과 국솥 1개씩이었다.

이 문서를 공개한 김학수 한중연 장서각 실장은 “재산 상속과 연계해 효심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내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며 “수시로 부모를 찾아뵙는 삭삭왕래(數數往來)가 효도라는 상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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