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역사의 아이돌’ 곰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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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王과 神에 비견되던 위상… 기독교 전파 1000년 걸쳐 서서히 몰락
◇곰, 몰락한 왕의 역사/미셸 파스트로 지음·주나미 옮김/400쪽·2만3000원·오롯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 곰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중간자이자 인간세계와 동물세계 사이에 위치한 특별한 존재로 숭배됐다. 스위스 베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이 청동상(2세기 말)은 켈트 신화 속 풍요의 여신 아르티오(오른쪽 과일 바구니 옆 의자에 앉은 여인)에게 바쳐진 조각이다. 곰과 풍요의 여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르티오는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 대응하는데 그 수호 동물이 바로 숲의 제왕 곰이었다. 오롯 제공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 곰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중간자이자 인간세계와 동물세계 사이에 위치한 특별한 존재로 숭배됐다. 스위스 베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이 청동상(2세기 말)은 켈트 신화 속 풍요의 여신 아르티오(오른쪽 과일 바구니 옆 의자에 앉은 여인)에게 바쳐진 조각이다. 곰과 풍요의 여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르티오는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 대응하는데 그 수호 동물이 바로 숲의 제왕 곰이었다. 오롯 제공
일본의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는 2002년 발표한 ‘곰에서 왕으로’(동아시아)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내놨다. 인류문명이 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국가가 출현했는데 이는 전 세계 온대지역에서 인간과 호환적 존재로 신성시되던 곰 토템의 붕괴와 함께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중국 남부 윈난 성에서 일본을 거쳐 연해주, 북극해, 알래스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연안에 살던 원주민은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는데 하나같이 강력한 곰 토템을 지녔음을 들었다.

이 이론엔 약점이 있다. 곰 토템을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로 간직하고 있는 한반도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바로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으로 변신한 웅녀 이야기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다. 환태평양 일대 곰 설화의 특징은 곰과 인간이 서로 교차 변신한다는 점이다. 또 곰과 인간 사이의 후손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웅녀설화는 이에 딱 부합한다.

‘곰에서 왕으로’와 단군신화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채워 줄 책이 번역됐다. 제1회 중세 프로뱅상 수상작인 ‘곰, 몰락한 왕의 역사’다. 중세 유럽의 문장, 인장, 상징 연구가인 미셸 파스트로가 2007년 발표한 책이다.

온대지역에 위치한 유럽에서도 곰은 구석기 시대부터 12세기까지 수만 년간 백수의 왕으로 신성시됐다. 구석기시대 곰 숭배는 프랑스 남부 동굴 유적 도처에서 확인된다. 8만 년 전 레구르두 동굴에 조성된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은 그 곁의 곰무덤과 석판으로 연결돼 있었다. 3만 년 전 구석기인의 벽화가 발견된 쇼베 동굴에서는 제단으로 추정되는 바위 위에 커다란 곰 두개골 1개를 중심으로 12개의 곰 두개골이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몽테스팡 동굴 입구에서 발견된 2만 년 전 곰 조각상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조각상으로 꼽힌다.

이런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럽 고대사학계가 여전히 선사시대 곰 숭배를 단정할 수 없다며 논쟁 중이란다. 저자는 곰 숭배의 흔적은 중세에도 역력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찍부터 기독교화한 지중해 국가를 제외하고 게르만, 슬라브, 켈트, 스칸디나비아의 종족에게 곰은 힘과 용기, 경배의 대상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켈트족의 영웅 아서왕이 ‘곰왕’이었다는 분석이다. 오늘날 인도유럽어에서 곰은 art-, arc-, ars-, ors-, urs-로 시작하는 어근과 관련된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수호동물이 곰이고,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르카디아(Arcadia)는 ‘곰의 나라’다. 이름에 곰의 흔적이 남은 아서(Arthur)가 마법의 검을 뽑는 시점은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2월 초이고 아서가 죽는 날은 곰이 겨울잠에 드는 11월 초다. 결정적으로 아서가 죽음을 맞을 때 충신 루칸을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루칸의 심장이 으스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아서가 ‘곰=왕’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단군 왕검의 왕검이 ‘왕=곰’을 의미한다는 해석과 맥이 닿는다.

덴마크 왕실의 선조가 곰이었으니 햄릿도 곰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고대 영웅시가의 주인공 베어울프는 곰과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으로 그 이름은 곰을 에둘러 호칭한 ‘벌들을 약탈하는 자’나 ‘벌의 적’이란 의미다. 오늘날 알파벳 b나 m으로 시작하는 곰을 지칭하는 유럽언어는 곰의 갈색 털빛이나 곰이 좋아하는 꿀과 관련한 호칭과 관련 있다. 왕의 이름을 피했던 동아시아의 기휘(忌諱)문화와 닮은꼴이다.

왕과 신에 비견되던 곰의 위상은 유럽 전역에 기독교 전파가 이뤄지는 5∼13세기에 걸쳐 서서히 몰락했다. 곰 숭배 문화를 척결해야 할 이교도 문화로 간주한 기독교의 집요한 공략의 결과였다. 공략은 세 갈래로 이뤄졌다.

첫째는 물리적 싸움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카를로스 대제 시절 이뤄진 수천 마리의 곰 살육이었다. 둘째는 길들이기. 성 마르티누스 같은 기독교 성인에 의해 길들여져 가축화된 동물로 곰을 격하시키는 한편 곰 관련 축제일을 성인들의 축일로 바꿔쳤다. 셋째는 악마화였다. 곰의 우중충한 털빛과 털북숭이 이미지, 남다른 성욕에 대한 환상을 결합해 6∼11세기에 집중적으로 악마 이미지 덧씌우기가 이뤄졌다.

거의 1000년에 걸쳐 진행된 이런 공략은 곰의 자리에 사자를 앉히는 것으로 완성됐다. 성경에는 곰과 사자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등하게 나온다. 하지만 곰에 대해 나쁜 점만 부각시키고 사자의 나쁜 점은 레오파르두스라는 허구의 동물에게 뒤집어씌웠다. 그 결과 13세기경 유럽 왕실과 귀족 문장(紋章)에서 사자는 15%, 곰은 0.5%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곰은 서커스의 구경거리를 거쳐 우둔함과 멍청함의 대명사로 처절히 몰락한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라. 20세기 들어 ‘곰의 역습’이 다시 펼쳐지니, 1902∼1903년 미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탄생한 곰 인형으로 어린이들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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