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서들이 웅성웅성… 귀 세워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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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장유승 지음/364쪽·1만8000원/글항아리

책이 낡았다는 것은 당대에 그 책이 그만큼 인기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낡고 냄새나는 이런 책들에 시대의 역사성이 배어 있다고 믿는다. 글항아리 제공
책이 낡았다는 것은 당대에 그 책이 그만큼 인기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낡고 냄새나는 이런 책들에 시대의 역사성이 배어 있다고 믿는다. 글항아리 제공
솔직히 별 책이 다 나온다 싶었다.

물론 고서는 배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옛 어른들이 어떤 책을 읽고 배웠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가 ‘섭치’(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변변하지 않고 너절한 것)라고 부르는 이 책들은 무게를 달아 팔아도 몇 만 원 못 받을 가치를 지녔단다. 귀하게 대접받는 책도 많은데 왜 하필 쓰레기 고서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살짝 ‘덕후(오타쿠)’ 냄새가 난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인 저자도 처음부터 이런 ‘폐품’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닌 모양이다. 우연히 낡디낡은 고서 두 상자를 얻었는데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문득 이 고서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단다. 아, 진짜 최강 덕후셨나? 그런데 생뚱맞은 고서들에서 저자는 사람과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서지적 가치가 높은 희귀한 책일수록 손댄 흔적이 별로 없이 깨끗하고, 흔해 빠진 판본일수록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 확실한 것은 책을 아끼고 공부하려는 열정만은 대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세월이 흘러 책들이 낡았다는 것은 반대로 그 책이 당대에 그만큼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였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책에 등장하는 ‘대학’ ‘논어’ ‘통감절요’는 글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했던 책이다. 학문을 익히고 과거에 응시하고 마음을 닦기 위해 속지가 닳도록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나 현대로 치자면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만큼 팔리지 않았을까. 그럼 진짜 시대의 역사성이 밴 책은 바로 이 구린내 나는 책들이 아닐까.

요즘으로 치면 포켓북만 한 ‘백미고사(白眉故事)’도 같은 맥락이다. 해석하자면 고사성어의 백미를 모은 책인데, 학생들이 들고 다니며 손쉽게 인용할 고사를 찾아보는 용도다. 가난한 선비를 위한 방각본(민간에서 싸게 만든 책) ‘사서오경’이나 가정집마다 하나씩 구비했다는 의서 ‘의학입문’ 역시 쓰임새로 따지면 어느 책보다 가치가 컸다.

이런 상상도 가능하겠다. 집에 일기장이 있으면 잘 보관하시길. 수백 년이 흐르면 어떤 대작보다 비싸질 수 있으니. 하지만 시대를 바꾼 건 그 저렴한 몸값으로 세상에 지식을 퍼뜨린 섭치들의 힘이었다.

“권력자의 발버둥보다 강력한 것이 대중의 요구입니다.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려는 대중의 욕구는 권력자도 막지 못했습니다. …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지식 정보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어떤 이들은 신분 상승을 꿈꾸고 어떤 이들은 변화를 갈망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택입니다.”

‘쓰레기…’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책이다. 가벼이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이라도 따뜻한 애정을 갖고 살피면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다만 고서에 치중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곁다리 이야기가 잦은 건 아쉽다. 책의 웅성거림이 살짝 산만하게 느껴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섭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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