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꽃할배가 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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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연 ‘템페스트’ 주역 70代 야술로비치-지갈로프
“셰익스피어 작품하며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아”

연극 ‘템페스트’의 배우 이고리 야술로비치(왼쪽)와 미하일 지갈로프.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야술로비치는 “아침이 정말 상쾌하다. 모스크바를 생각하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연극 ‘템페스트’의 배우 이고리 야술로비치(왼쪽)와 미하일 지갈로프.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야술로비치는 “아침이 정말 상쾌하다. 모스크바를 생각하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맞기 5년 전 초연된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에서 용서를 이야기했다. 자신을 파멸시킨 원수들을 단번에 무너뜨릴 만한 능력을 얻었음에도 조건 없이 모두를 용서하는 노귀족 프로스페로가 극의 주인공이다.

최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현대적 스타일로 재해석한 ‘템페스트’를 공연한 러시아 체호프 페스티벌 극단의 이고리 야술로비치(72·프로스페로 역)와 원수 중 하나인 나폴리 왕 역을 맡은 미하일 지갈로프(71)를 4일 만났다.

야술로비치는 1962년, 지갈로프는 1970년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영화와 TV를 오가며 한 해도 연기를 멈춘 적 없는 백발노장이다. 이들은 “이 나이 먹어 이번 작품을 하고서야 용서가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용서가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이 극 속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을 안겼어. 나는 그가 ‘인간은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자신은 용서받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해. 웃으며 얼싸안는다고 정말 용서한 걸까. 알 수 없어. 그게 인생이야. 배신, 분노, 복수, 사랑은 분절돼 있지 않아.”(야술로비치)

“글쎄. 나는 프로스페로가 모든 걸 용서했다고 보지 않아. 말로는 ‘쿨’한 척 용서한다고 했지만, 그 뒤가 어찌될지는 모르잖아. 셰익스피어가 결말에서 던진 건 수많은 물음표야. 막이 내려 연극이 끝나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니까.”(지갈로프)

―데클런 도넬런은 최고의 셰익스피어 극 연출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와의 작업에서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올해가 이 연극을 함께한 지 3년째인데, 도넬런은 무엇보다 늘 생동감을 추구해. ‘프로스페로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거듭 주문하면서도 정령을 부려 태풍을 일으키는 원작의 ‘마법사 이미지’를 많이 벗겨냈어. 인간적 한계를 더 뚜렷이 살려냈지.”(야술로비치)

“그는 배우를 연기하는 기계처럼 다루지 않아. 무대마다 배우 스스로 새로운 해석과 시각을 얻도록 하는 데 집중하지.”(지갈로프)

―두 사람 모두 무대 위 모습에서 에너지가 넘쳐 보여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생각하게 돼.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아니라 어떤 연극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특정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소비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어. 신이 내게 부여하는 역할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갈로프)

“이 직업에는 항상성이 없어. 아무것도 안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아. 정해진 틀도 없어. 배우는 뭔가를 항상 찾지만 결국 헤매기만 할 뿐이야. 그 방황의 시간이 배우가 일을 통해 얻는 소득이라면 소득이지.”(야술로비치)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템페스트#이고리 야술로비치#미하일 지갈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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