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여행서 붐에 여행작가 아카데미도 호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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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책 나도 쓰겠다 싶죠? 그겁니다, 당장 쓰세요”

[1] 여행작가 조명화 씨가 지난달 22일 강연을 마친
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 한국여행작가협회가 운영하는 ‘여행작가학교’
수강생들이 강원 삼척시 영경묘에서 사진 현장실습
을 하고 있다.
[3] 여행작가학교 수강생들이 취재여행 프로세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4]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작가 과정 수강생들이
선배 기수의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1] 여행작가 조명화 씨가 지난달 22일 강연을 마친 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 한국여행작가협회가 운영하는 ‘여행작가학교’ 수강생들이 강원 삼척시 영경묘에서 사진 현장실습 을 하고 있다. [3] 여행작가학교 수강생들이 취재여행 프로세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4]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작가 과정 수강생들이 선배 기수의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일단 내세요. ‘쪽팔릴’ 겁니다. 그런데 그걸 통해서 성장할 수도 있고 다음에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여행 책은 몸으로 배우는 게 정답인 거 같아요.”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강연 전문 카페 마이크임팩트스퀘어. ‘삐급여행’이라는 필명을 쓰는 여행작가 조명화 씨(32)의 강연을 청중이 열심히 메모해 가며 듣고 있었다. “독자들이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서점에 가면 ‘이런 책은 나도 쓰겠다’ 싶은 책들 많잖아요”라는 조 씨의 말에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행작가 되는 법’ 강좌 봇물

이날 강연의 주제는 ‘여행작가가 되는 법’,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여행작가 지망생들이었다. 외국계 항공사를 다니며 여행작가를 겸업하다 지난해 7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전문 전자책 출판사 ‘세계견문록’을 세운 조 씨는 동료 여행작가들과 함께 여행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아카데미 ‘여행사관학교’를 4년째 운영하고 있다.

2009년부터 이 아카데미를 통해 ‘데뷔’한 여행작가는 40명에 이른다. 아마추어 문집을 내거나 잡지에 기고문을 한 번 싣고 “나도 작가”라고 우기는 게 아니다.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있고 인터넷서점 검색 창에 이름을 입력하면 번듯하게 도서정보가 출력되는, 그런 책의 저자가 됐다는 의미다.

적어도 조 씨의 이날 강연은 들으나마나 한 ‘공자님 말씀’의 향연은 아니었다. “자기만의 테마를 가져라” “최고보다는 최초를 노려라”와 같은 ‘전략적’ 지침에서부터 “인세 수입은 기대하지 말라” “한국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 능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인들에게 팔아라”와 같은 적나라한 조언도 나왔다. 출판계획서를 쓰는 법, 전자책 쉽게 내는 법, 저작권 문제가 없는 폰트를 구하는 법 같은 자잘한 팁도 있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세계견문록이 주도하는 집단 창작이다. 국내 지방도시라든가 놀이공원, 신분당선을 타고 갈 수 있는 여행지와 같은 구체적인 주제를 잡고 여러 여행작가 지망생이 원고를 나눠 쓴 뒤 이를 합치면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지고 작가 데뷔도 쉽게 된다는 얘기다.

보수적인 애서가들이라면 ‘저술 활동이 무슨 제조업이냐, 책을 이렇게 쉽게 만들어도 되는 거냐’라는 반발심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이 수요 없이 저절로 생겨난 건 아니다. 10∼15주 코스의 ‘여행작가 되기’ 강좌가 2009년부터 대학과 출판사, 언론사 문화센터 등에 만들어졌고,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여행작가 한번 해볼까’(위즈덤하우스)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여행작가 가이드북’(소수출판사)과 같은 ‘여행책 쓰는 법에 관한 책’도 나왔다.

각박한 사회, 많아지는 여행책

2009년부터 ‘여행작가학교’를 운영한 한국여행작가협회의 이종원 부회장은 “처음에 학교를 열 때에는 이런 수업을 과연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긴가민가했는데 나중엔 ‘여행작가 지망생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여행잡지 편집장, 신문사 여행 담당 기자, 사진작가, 술 평론가, 한국관광공사 팀장 등이 강사진으로 참여하고 13주 16차례에 걸친 강의 중에 현장 실습과 수강생들이 쓴 글을 품평하는 시간도 갖는다.

다른 대학이나 출판사의 강좌 내용도 크게 다르진 않다. 동국대 평생교육원의 여행작가 과정에는 여행작가 외에도 음식 칼럼니스트, 팝 칼럼니스트, 시인, 에세이 작가가 강사로 참여해 수강생에게 15강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와 사진 찍기를 가르친다.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가 운영하는 아카데미는 13주에 걸쳐 가이드북 기획, 여행기사 에세이, 여행서에 필요한 문화 트렌드 등을 가르친다.

여행작가 되는 법에 대한 강의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1차적으로 여행과 여행서적 붐이 있다. 출판시장 불황 속에서도 여행도서만큼은 종류도, 판매 부수도 최근 10년간 크게 늘었다. 교보문고 2002년 여행 분야 책 판매부수는 3만3000부였으나 지난해에는 85만 부가 됐다. 신간 여행서는 같은 기간 189종에서 531종으로 늘었다. 교보문고 진영균 대리는 “2008년 서적 대분류 기준으로 ‘여행’ 메뉴를 따로 뒀다”며 “전에는 따로 한 코너로 독립할 수 없는 규모였는데 갑자기 커졌다”고 말했다.

2008년에 인터넷교보문고에서 ‘여행’ 메뉴와 함께 생긴 새 항목이 ‘자기계발’이다. 사회가 각박해지자 ‘내 몸값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책’과 ‘그런 경쟁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동시에 인기를 모은 셈이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행 도서들은 대상 지역이나 테마가 극도로 세분됐다. 트랙터를 타고 가는 여행서(‘180일간의 트랙터 다이어리’)나 한지(韓紙) 제조 관련 지역을 다룬 책(‘한지 날다 꿈꾸다’),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소개하는 서울 뒷골목과 전주 한옥마을 여행도서(‘오렌지 캬라멜의 청춘여행’)가 나올 정도다. 인터파크도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1∼6월) 여행도서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이상 늘었다”며 “크로아티아와 터키 관련 도서 판매가 늘었고, 국내 여행도 마니아층 위주로 특별한 코스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욕구

그러나 정작 예비 여행작가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수강생들이 돈벌이보다는 저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조명화 씨는 “수강생들을 보면 여행 전문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뭔가 나만의 작품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며 “과거에는 교수나 기자 정도의 내공을 가진 사람만 쓸 수 있었던 책을 나도 내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소설보다 쓰기 쉬운 장르, 구하기 쉬운 테마와 소재, 그러면서도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싶다는 조건을 찾다 보면 여행서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실제로도 여행도서 분야는 유난히 일반인 작가가 많다.

조 씨의 강연을 들은 수강생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안동욱 씨(30·회사원)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며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만의 일을 해보자 싶었는데 거기에 책 쓰는 일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박햇님 씨(30·여·회사원)는 “내가 좋아하는 걸 기록하며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입사 3년차 증후군’을 겪는 젊은이만 여행작가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작가과정의 유연태 주임교수는 “최근에는 50대 남성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며 “놀고먹는 걸로 끝나는 여행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 대해 기록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방편으로 여행책 쓰기를 선택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기업체에서 은퇴를 앞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요청도 자주 들어온다”고 전했다.

여행작가들이 예비 여행작가들에게 하는 조언은 뭘까. 이종원 부회장은 “일단 많이 다녀서 경험을 쌓는 게 최고”라며 “많이 다닐수록 느끼는 것도 많고 다른 여행지나 같은 장소를 다른 시기에 갔을 때와 비교 분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명화 씨는 “초보자들은 분야와 테마를 좁게 잡을수록 실제 출판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며 “자기 직업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제빵사라면 틈틈이 해외 빵집을 탐방하고, 대학생이라면 대학 캠퍼스 위주로 여행을 다니며 느낀 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라는 설명이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여행작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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