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공직자 1년만 더 머물게 하소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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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만인산 특별전’… 고을 백성 2091명 이름 양산에 빼곡

이만기 초산부사를 위한 만인산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그의 유임을 간청하는 지역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수 놓아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만기 초산부사를 위한 만인산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그의 유임을 간청하는 지역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수 놓아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백성을 두루 살핀 어진 공직자이니 1년을 더 유임시켜 주시길 간청 드리옵니다.”

참으로 떠나보내기 싫었나 보다. 한 땀 한 땀 자수 놓은 이름이 모두 2091명. 어른이 양팔을 벌려도 넘치는 양산에 빼곡하니 이름들이 새겨졌다. 행여 가시더라도 마음 담은 일산(日傘) 아래 땡볕이라도 피하라는 뜻이었을까. 흔한 문양 하나 없지만 ‘만인산(萬人傘)’의 자태는 참으로 고왔다.

26일부터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에서 열리는 ‘이동영 기증 만인산 특별전’은 이처럼 1878∼1879년 평안도 압록강 인근 초산도호부사로 재직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만기(李晩耆) 선생의 유품 60여 점을 전시한다.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청렴결백하고 공명정대한 선정을 펼친 그를 위해 지역민들은 생사당(生祠堂)까지 세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본인은 이를 겸양해 이후 철거했다는 미담도 전해진다.

다양한 유품을 선보이지만 역시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만인산이다. 정부관리가 행렬에 나설 때 의장으로 쓰는 일산에 촘촘히 이름들을 수놓은 만인산은 그 뜻도 귀하지만 온전한 형태로 남은 게 몇 없다. 2009년 KBS ‘진품명품 쇼’에서 이 만인산이 1억2500만 원이라는 고가의 감정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인산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초산실기’와 이만기 선생이 초산부사로 임명될 때 받은 임금의 교지, 1852년 과거 급제 뒤 받은 홍패(紅牌) 등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은 이만기 선생의 고손자인 이동영 동아프린테크 고문(77)의 기증 덕분에 성사됐다. 그간 고려대 안동대 박물관 등에도 여러 차례 조상 유품을 내놓은 이 고문은 민속박물관에 유품 946점을 기증했다. 속되게 값어치를 따져도 수억 원 이상이다. 이 고문은 “조상 유품을 장롱에 넣어두고 혼자 볼 게 아니라 함께 공유해 문화재 사료 연구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9월 23일까지. 02-3704-311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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