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조용필 VS 불타는 이문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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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문 연 조용필과 이문세의 ‘송파 콘서트 대전’

《 2013년 6월의 문을 열어젖힌 ‘송파 콘서트 대전’은 빛과 불의 대결이었다. 가수 조용필과 이문세는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서로 다른 무대를 준비했다. 은둔형 음악 창작자에 가까운 조용필은 음악과 음향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대중 지향의 방송진행자 겸 가수인 이문세는 방대한 인맥과 화려한 볼거리를 동원해 블록버스터 쇼를 만들어 냈다. 첨단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에 입체적인 영상을 투사하고 ‘움직이는 무대’를 선보이며 공연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 줬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

“헬로? 잘 있었죠?” 조용필의 무대 의상은 서태지를 연상시켰다. 왼쪽 다리에 은색 체인까지 늘어뜨렸다. 그의 공연에서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졌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헬로? 잘 있었죠?” 조용필의 무대 의상은 서태지를 연상시켰다. 왼쪽 다리에 은색 체인까지 늘어뜨렸다. 그의 공연에서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졌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용필 콘서트는 빛의 공연이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8시 13분. 조용필 ‘헬로’ 콘서트 첫째 날.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의 불이 모두 꺼졌다. ‘헬로? … 헬로?’ 로봇처럼 변형된 목소리가 공연장 전후좌우에서 객석으로 갈마들었다. 팝스타 내한 공연에서도 들은 적 없는 서라운드 입체음향이었다. 무대 전면을 막아선 거대한 LED 스크린인 미디어월(media wall)이 문처럼 갈라져 열리며 두 팔을 벌린 조용필이 등장했다. 최신 팝 스타일의 ‘헬로’로 공연이 시작됐다. 지층처럼 3단으로 쌓인 무대의 단면은 색색의 영롱한 빛을 뿜어 냈다.

조용필이 두 번째 곡 ‘미지의 세계’의 후렴구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를 부르는 순간 두 번째 단이 분리돼 공중부양하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 최희선, 베이시스트 이태윤, 조용필을 실은 단은 움직이는 지지대를 타고 1층 관객의 머리 위로 양탄자처럼 둥실 떠올라 2층 객석 쪽을 향해 수평 전진했다. ‘무빙 스테이지’였다. 3층 객석 뒤로 긴 띠처럼 둘러쳐진 LED에는 음파 모양의 무늬가 흘렀다.

‘헬로’ 앨범에서도 최첨단의 음향을 들려주는 몽환적인 곡 ‘서툰 바람’에서도 신기술이 등장했다. 분사되는 선은 푸른색이지만 공연장 벽에 가 닿는 끝에서는 다양한 색을 내는 ‘무빙 헤드 레이저’. 연주는 록 밴드 편성의 ‘위대한 탄생’ 멤버들 손에서 대부분 나왔다. 미리 녹음된 전자음도 제한적으로 활용됐다.

조용필은 “나이가 들어 목소리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음의 밝기를 안 떨어뜨리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다”고 했다. ‘친구여’ ‘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이어진 공연 중반부에서는 중장년층 위주의 1만 관객이 눈물어린 합창을 이끌었다. ‘꿈’에서는 무대를 겹겹으로 감싼 LED 화면에 빌딩 숲이 입체적으로 투사됐다. 조용필의 가창은 마지막 곡 ‘여행을 떠나요’에 이르기까지 2시간 20분 동안 음정과 음색 모두 전성기와 다를 바 없이 깔끔했다. 그는 ‘빛의 마법사’였다.

“대한민국에서 얼굴이 제일 긴 이문셉니다!” 이문세는 여러 색의 정장을 자주 갈아입었다. 손발을 뻗는 안무도 입담만큼 매끈했다. 쇼가 뭔지를 알았다. 무붕 제공
“대한민국에서 얼굴이 제일 긴 이문셉니다!” 이문세는 여러 색의 정장을 자주 갈아입었다. 손발을 뻗는 안무도 입담만큼 매끈했다. 쇼가 뭔지를 알았다. 무붕 제공
이문세 공연은 불의 콘서트였다. 1일 오후 8시 7분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이문세’ 콘서트는 애국가로 시작했다.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 모양으로 제작된 무대는 조용필 콘서트처럼 겹겹의 LED 화면과 조명으로 덮여 있었다. 그라운드 관객의 시야각을 뒤덮을 정도의 규모였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의 영상이 무대를 덮으며 ‘붉은 노을’이 시작됐다. 경기장을 메운 5만 명의 함성과 발광봉의 물결은 블록버스터 공연의 충실한 장치가 됐다. 미디어월이 양옆으로 열리자 관현악단과 코러스, 밴드, 댄서로 구성된 30여 명의 출연진이 드러났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애수’에서 각각 가로수길과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영상이 입체적으로 무대를 둘러싸자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할 말을 하지 못했죠’ ‘조조할인’은 남녀 댄서를 활용해 뮤지컬 같은 무대를 펼쳤다. 이문세의 코믹한 입담도 한몫했다.

정장 차림의 이문세는 종종 마술사로 변했다. ‘사랑이 지나가면’에서는 이문세가 연주자 없이 유령이 연주하듯 건반이 눌러지는 자동연주 피아노로 작곡가 이영훈과의 가상 협연을 했다. ‘깊은 밤을 날아서’에서는 악보가 그려진 대형 종이배 모형을 타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옛사랑’과 ‘그대와 영원히’는 그라운드 석 중간에 우뚝 솟은 회전무대에서 빙빙 돌면서 기타를 치며 불렀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에서는 김태우, 노을, 이수영, 김완선, 박찬호, 안성기, 이금희, 조세현 같은 각계각층의 스타가 ‘이문세 합창단’으로 나와 노래했다. 마지막 곡 ‘붉은 노을’은 관객들 머리 위로 터지는 불꽃놀이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문세는 불을 다루는 마술사 같았다.

조용필과 이문세, 두 개의 무대를 휘감은 미래적인 장치들은 관객을 과거로의 여행으로 이끌었다. 역설적이었다. 시대를 관통한 노래들이 있어 가능했다. 흔들림 없는 가창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조용필#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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