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킴벡의 TRANS WORLD TREND]파리 패션위크, 과감하고 변화무쌍하지만 안정적인 스타일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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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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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AP연합뉴스
파리=AP연합뉴스
파리에 도착하면 따뜻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파리는 뉴욕보다 추웠다. 봄인 줄 알았는데 차게 비가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2013, 2014년 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해 열린 이번 파리 패션위크는 그 어느 때보다 볼거리가 많아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해부터 파리 패션 브랜드들의 수장이 대폭 바뀌면서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시즌부터 새롭게 컬렉션을 이끌고 있는 디오르의 라프 시몬스와 생로랑의 에디 슬리만에게는 이번 시즌이 앞으로의 행보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전통적으로 패션 브랜드들은 봄·여름 시즌보다는 가을·겨울 시즌 의상에 더 공을 많이 들인다. 단가도 더 비싸고,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겨울 시즌 의상을 선보이는 이번 컬렉션이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기회라는 예측이 높아졌다. 2년차 또는 두 번째 시도 때 첫 번째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실망시키는 ‘소포모어 징크스’가 생기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시각도 있었다.

1일 열린 시몬스의 디오르 쇼는 그가 이 패션 하우스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전에 디오르를 이끌었던 존 갈리아노 쇼에 비해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덜해 아쉬웠다. 파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유서 깊은 패션하우스, 발렌시아가 역시 이번 시즌 새로운 디자인 수장을 맞이했다. 뉴욕 컬렉션에서 승승장구하던 중국계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그 주인공. 지난 15년간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이 브랜드를 패션계의 중심으로 이끈 니콜라 게스키에르에 이어 책임 디자이너로 발탁된 그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아직 20대인 신예 디자이너에게 발렌시아가라는 큰 옷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일련의 불안감은, 그러나 쇼 이후 완전히 사그라졌다. 컬렉션이 끝난 뒤 세계의 유명 패션 매체들은 ‘매우 안정적이면서 인상 깊은 출발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내렸다.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새로운 디자이너로 발탁돼 2년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미야마에 요시유키의 컬렉션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기존의 이세이 미야케가 가진 소재의 장점을 살리면서 컬러감을 더해 주목도를 높였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영국의 체크 패턴들을 응용한 다양한 룩을 선보였다.

최근 다양한 색감과 과감한 디자인으로 젊은 브랜드로 환골탈태한 ‘겐조(오른쪽)’ 역시 디자인 수장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뉴욕의 편집숍 ‘오프닝 세리머니’의 두 수장, 움베르토 레온과 캐럴 림은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아이템들을 쏟아냈다. 다소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났던 이 브랜드는 두 주역에 힘입어 패션피플이 사랑하는 ‘잇(it) 브랜드’로 떠올랐다. 그러나 급격한 변신에 한편으로는 겐조의 오랜 고객들을 잊은 건 아닌지 아쉽다는 목소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브랜드 ‘빈폴’과 협업한 경험이 있는 두 디자이너 역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하우스의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루이뷔통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영국 출신의 킴 존스, 에르메스의 디자이너인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토프 르메르다.

동양계인 알렉산더 왕이 파리의 패션하우스를 이끌게 됐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벅찬 가슴을 달래기 어려웠다. ‘이제 동양인도 유명 브랜드의 책임 디자이너가 되는 날이 왔구나’ 하는 감흥이 컸기 때문이다. 감흥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한국 출신 디자이너도 유명한 브랜드를 이끄는 수장이 됐다는 뉴스를, 되도록 빨리 듣게 됐으면 좋겠다.

파리=조엘 킴벡 패션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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