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보다 영롱한 김창열의 물방울, 대만에서 알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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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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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만미술관 한국작가 첫 개인전

《“달마 대사는 9년 동안 벽만 보다가 어느 날 득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40여 년 가까이 물방울만 들여다보았지만 득도는커녕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거나 조형 예술가들이 탐구하는 세계나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점에서 같은 겁니다.”》
국립대만미술관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물방울을 화두로 작업해온 김창열 화백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김 화백의 ‘물방울’
의 시작은 재료 살 돈이 없어 캔버스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 계기다. 타이중=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국립대만미술관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물방울을 화두로 작업해온 김창열 화백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김 화백의 ‘물방울’ 의 시작은 재료 살 돈이 없어 캔버스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 계기다. 타이중=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3일 대만에서 세 번째로 큰 타이중 시의 국립대만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의 개막식에 참석한 김창열 화백(83)의 인사말은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황차이랑 대만미술관장, 린밍저 산(山)예술문화교육기금회 대표,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 미술가 심문섭 씨, 파리의 갤러리스트 보드앙 르봉 등 100여 명의 다국적 참석자들은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냈다.

대만 문화부 초청으로 이뤄진 전시는 국내외에서 ‘물방울 작가’로 명성을 얻은 김 화백의 주요작품 47점을 아우른 회고전이다. 1988년 개관한 이 나라 유일의 국립미술관에서 마련한 한국작가의 첫 개인전이란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전시에선 국립현대미술관과 금호미술관, 국내외 소장자에게 대여한 100호 이상 대작을 중심으로 ‘물방울’ 연작의 탄생부터 진화과정을 짜임새 있게 선보였다. 관객 왕신윤 씨(26)는 “진짜 물방울 같아서 한번 만져보고 싶다”며 영롱한 물방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 물방울로 물방울을 넘어서다

1950년대 추상미술에 앞장섰던 김 화백은 창작을 위해 1960년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당시 자기 아파트를 그의 화실로 공유했던 지인 김주봉 씨(전 국회도서관장) 부부는 약혼과 결혼 때 받은 2점을 응시하며 감회에 젖었다. 부인 이금주 씨는 “1968년 결혼할 때 법랑냄비 세트를 갖고 싶다 했더니 돈 없는 화가는 대신 그림을 골라가라 했다. 냄비 대신 금쪽처럼 소중한 보물을 얻은 셈”이라며 웃었다. 그가 극사실적인 물방울 작업으로 선회한 것은 1969년 프랑스로 이주하면서였다. 1970년대 초 파리 근교 마구간을 빌려 작업하던 궁핍한 시절.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 화가는 물감이 쉽게 떨어질 수 있게 그림 뒷면에 물을 뿌려두었다. 어느 날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방울을 발견한 화가는 그때부터 동양사상과 서구예술을 접목한 물방울을 화두로 삼았다.

널찍한 전시장엔 1964∼2012년의 평면 작품과 2점의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황 관장은 “한국문화와 천자문, 서예의 획선과 먹의 느낌이 물방울 작업에 깃들어 있다. 생명이 있고 호흡을 하는 듯한 물방울”이라고 소개했다. 작가 심문섭 씨는 ‘김창열=물방울 작가’라는 단순 등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구상적이면서 추상적이고 사실적이면서 개념적이다. 공간의 비움과 채움, 생성과 소멸 등을 무한대로 변주한 작업이다.”

○ 물방울에 우주를 담다


물방울의 크기도 표정도 다르다. 하나만 덩그러니 그린 것도 있고, 수백수천 물방울로 빼곡하게 채운 작품도 있다. 한글이나 한자와 융합한 물방울도, 물이 번진 흔적을 강조한 그림도 있다. 갈색 마대와 나무판에 그린 회화도 있고 투명한 조형물도 있다. 다양한 작업 속에 존재와 우주의 근원으로 회귀하는 그의 명상적 사유가 오롯이 응축돼 있다.

40여 년간 한 가지만 그린다고 폄훼하는 시선 속에도 물방울에 천착한 이유가 궁금했다. “물방울의 노예가 된 것은 사실이다. 마누라가 예뻐서만 같이 사는 게 아니다. 여러 인자가 작용했다”고 답하는 화가의 꿈은 진행형이다. “물방울을 그려도 물방울 이상의 것을 그리고 싶다.”

타이중=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김창열#대만미술관#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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